딩크로 살기로 결심했다 - 8

오지랖이라는 이름의 소음

by 야호너구리

딩크를 결정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소음들이 있다. 주로 명절 친척 모임이나 직장 상사와의 술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이다.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돈이 부족해서요, 아직 준비가 안 돼서요. 그런 말들은 대화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참견의 시작이었다. 돈은 낳으면 다 벌게 된다느니, 완벽한 준비 같은 건 세상에 없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조언들이 쏟아졌다.


그들은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너무나 쉽게 아직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했다.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대해 말할 때 유독 용감해진다. 특히 출산 문제에 있어서는 마치 본인들이 내 인생의 채권자라도 된 양 군다. 나중에 늙어서 외로울 텐데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은 일종의 저주처럼 들린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아이는 늙어버린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소모품이거나, 병든 육신을 수발들 무급 간병인이어야 한다. 자식을 낳는 것이 가장 이타적인 행위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토록 지독한 도구적 계산이 깔려 있다. 사람은 도구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나는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내 밥값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내 몸의 안위부터 챙기겠다는 게 이기적인 거라면 기꺼이 그렇게 불리겠다. 비난받는건 너무 익숙하니깐.


하지만 진짜 이기적인 게 누구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자식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 어떤 우울을 물려받을지 고민하기보다 일단 낳고 봐야 한다고 떠미는 사람들. 그들은 정작 내 아이가 불행해졌을 때 단 1원도 보태주지 않을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오면 그저 웃거나 화제를 돌린다. 그들의 오지랖에 일일이 대응하기엔 내 감정의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우리의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정말로 텅 빈 집안을 보며 한숨을 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회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의 책임을 전가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내 삶을 맞추기엔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 궤도도 아닌 보통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20대 때로 충분했다.


우리는 그냥 우리 식대로 살기로 했다. 세상의 평균치를 맞추지 못해 결함 있는 부부로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타인의 오지랖이 닿지 않는 우리만의 고요한 방에서, 우리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으며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그저 내 불행과 후회 정도는 내가 직접 고르고 책임지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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