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 위에선 37세 남자

by 야호너구리

37세 남자의 인생은 몇 갈래로 나뉜다.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혼자 살거나, 아직 부모님 집에 주소가 남아 있거나. 분류는 쉽다. 주민등록등본, 회사 인사카드, 명절 스케줄. 몇 줄만 보면 어디쯤 서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 즐거운지도 잘 모르겠다.


이 나이에 자주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자오선. 지도에는 그어져 있는데, 실제로는 밟히지 않는 선. 이쪽과 저쪽을 나눈다고 하지만, 그 위에 서 있어도 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넘어온 순간을 정확히 말해보라고 하면 다들 애매해진다. 날짜 대신 증상을 말한다. 잠이 얕아졌다, 회복이 느려졌다, 허리를 돌릴 때 소리가 난다. 선은 눈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


자오선을 넘었다는 자각은 늘 뒤늦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하루를 넘겼을 뿐이다. 출근했고, 퇴근했고, 탕비실에서 맥심 모카골드를 탔다. 종이컵 바닥에 설탕이 조금 남아 있었다. 젓지 않았다. 단맛이 먼저 오고, 뒤늦게 쓴맛이 따라왔다. 이런 감각들이 쌓여서 나중에야 이름을 얻는다. 그때가 경계였다고.


이 나이가 되면 선택은 끝난 것처럼 취급된다. 바꿀 수는 있어도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실제로는 끝났다기보다 굳어진 상태에 가깝다. 크게 결심해서 들어온 길이라기보다,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는 경우가 많다. 결단보다는 관성.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길어진다.


주변을 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결혼한 사람들은 피곤해 보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도 피곤해 보인다. 아이가 있는 집은 일정이 빡빡하고, 없는 집은 조용하다. 조용한 대신 설명할 게 많다. 부모님과 사는 사람들은 편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편함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37세의 삶은 즐거움보다 유지에 가깝다. 몸을 관리하고, 잠을 계산하고, 무리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일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덜 피곤한 쪽이 기준이 된다. 하루가 끝나면 성취보다 무사함을 확인한다. 어디 크게 아픈 데는 없는지, 내일 출근은 가능한지.


가끔은 자오선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자리. 돌아갈 수는 있을 것 같고, 굳이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가자니 체력이 애매하다. 그래서 속도를 줄인다. 보폭을 줄인다. 넘어지지 않는 게 목표가 된다. 잘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자오선은 오늘도 거기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시도 남기지 않는다. 나는 그 근처를 맴돈다. 완전히 건너왔다는 확신도 없고, 다시 돌아가겠다는 결심도 없는 상태. 37세는 그런 나이다. 끝난 것도 아니고, 시작도 아닌. 경계 위에서 몸 상태부터 확인하는 나이.

작가의 이전글신입사원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