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뉴욕이 그립다. 가본 적도 없는데. 브루클린의 벽돌 골목, 센트럴파크의 가을, 노란 택시. 영화랑 드라마에서 수없이 빌려온 장면들이다. 기억은 없고 이미지뿐인데, 이상하게도 그립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아마 그 도시는 실제 장소라기보다, 아직 쓰지 않은 가능성 같은 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뉴욕은 늘 잘 편집된 상태로 떠오른다. 바쁘고, 멋있고, 조금은 외로운 도시. 새벽에 혼자 피자를 접어 먹고, 낡은 아파트 창가에 서 있는 장면들. 현실이라면 월세부터 계산했을 텐데, 상상 속에서는 그런 게 없다.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얼굴로만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실제로 가본 도시는 따로 있다. 더블린이다. 13년 전이었다. 아이폰 4를 들고 갔다. 지금 기준으로는 카메라라고 부르기 민망한 화질이었다. 사진을 찍어도 전부 흐릿했다. 대신 기억은 또렷하다.
저녁마다 펍 문을 밀고 들어가면, 눅눅한 나무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바닥은 늘 약간 축축했고, 비가 그친 뒤에도 돌바닥은 금방 마르지 않았다. 기네스 한 잔을 받아 들면 거품이 먼저 입술에 닿고, 뒤늦게 쓴맛이 올라왔다. 그 쓴맛이 이상하게 오래 갔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옆자리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해도 충분했다.
더블린은 따뜻했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외투를 벗을 만큼의 온도도 아니었다. 그냥, 그 도시에서는 몸이 먼저 긴장을 풀었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어디로 가고 있냐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가벼웠다. 적어도 그렇게 기억한다.
가본 곳은 이렇게 기억이 붙는다. 냄새, 맛, 바닥의 질감 같은 것들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다시 떠올릴 때마다 관리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다시 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기억은 닳는다.
반면 뉴욕은 아직 닳지 않았다.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상상이다. 지금의 삶이 답답해질 때, 아직 저쪽에 남아 있는 선택지처럼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갈 수 있을지, 끝내 못 갈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도시가 아직 나를 위로해준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꼭 가본 것만 그리워하지 않는다. 못 가본 곳, 못 살아본 삶, 안 해본 선택들.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더블린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뉴욕은 아직 열어보지 않은 문이다. 하나는 기억이고, 하나는 가능성이다.
지금의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오늘도 출근했고, 커피는 여전히 밍밍했고, 지하철은 붐볐다. 그래도 가끔은 뉴욕을 떠올린다. 가본 적 없기 때문에 가능한 그리움. 아이폰 4로는 찍을 수 없는 풍경. 아직 닳지 않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