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직 - 1

접수 완료라는 말이 없었다

by 야호너구리

사직서를 냈다.

메일로 보냈고, 참조도 정확히 넣었다. 제목은 평범했다. 사직의 건. 괜히 튀지 않게. 첨부파일 이름도 조심했다. 사직서_최종.pdf. 더 이상 손볼 게 없다는 뜻처럼 보이길 바랐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하지는 않았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손도 생각보다 안정돼 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이미 한 번 마음속에서 다 끝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은 늘 늦는다. 감정은 먼저 떠나고, 몸만 뒤따라온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보통은 온다. 형식적인 문장이라도. 확인했습니다, 면담 일정 조율하겠습니다, 인사팀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접수됐다는 신호는 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읽음 표시조차 애매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도 출근했다.

사직서를 냈다는 사실이 회사에서는 아직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출입증은 그대로 작동했고, 엘리베이터는 늘 타던 층에 멈췄다. 책상도 그대로였다. 아무도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고, 아무도 “그 메일 말인데”라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회의에도 들어갔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메모를 했고, 일정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달 얘기도 나왔다. 나는 그 일정이 나와 상관없는 미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동시에, 상관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아무도 퇴사를 확정해주지 않았으니까.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잠깐 고민했다.

사직서를 낸 사람이 점심 메뉴를 고민해도 되는 걸까. 그래도 습관처럼 김치찌개를 골랐다.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쪽. 이 회사에서 늘 고르던 맛. 혀는 기억을 빨리 포기하지 않는다.


오후에도 아무 일은 없었다.

인사팀에서 연락은 없었고, 팀장도 평소처럼 말했다. “이거 오늘 중으로 한 번만 더 봐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사적으로. 그 반응이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다.


퇴근 시간쯤이 되자, 갑자기 애매해졌다.

나는 이미 떠난 사람일까,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일까. 사직서를 낸 상태와 퇴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 사이. 그 경계가 생각보다 흐렸다. 회사는 나를 붙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놓아주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메일함을 다시 열어봤다.

보낸 메일은 그대로 있었다. 보관함에도, 휴지통에도 가지 않았다. 제목만 단정하게 남아 있었다. 사직의 건.


이 세계에서는 사직서를 내는 것만으로는 퇴사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그걸 받아들여야만, 일이 끝나는 구조. 나는 지금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었다. 이미 마음은 나왔는데, 현실은 아직 회사에 남아 있는 상태.


다음 날도 출근할 것이다.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아니, 답장이 와도 출근할지 모른다.


이 세계에서는 사직서를 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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