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직 - 2

사직서를 낸 사람의 일상

by 야호너구리


사직서를 낸 다음 날부터, 일상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출근 시간은 같았고, 지하철은 여전히 붐볐다. 스마트오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컵 안에서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스를 마시면 몸에 안 좋다던 말이 잠깐 떠올랐지만, 그 생각은 늘 그렇듯 거기까지였다.


회사에 도착하니 출입증이 정상적으로 찍혔다. 빨간 불도 아니고, 경고음도 없었다. 보안 시스템은 내가 아직 여기 있어도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판단이 누구의 몫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조금 불안했다.


사직서를 낸 사람의 책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어제와 똑같았다. 모니터 위치도, 마우스 감도도 그대로였다. 메신저에는 밤사이 쌓인 메시지가 몇 개 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부터, 꼭 봐야 할 것까지. 나는 순서대로 읽었다. 사직서를 낸 사람도 업무 우선순위는 지킨다. 그건 오래된 습관이다.


회의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으면서 잠깐 망설였다. 이 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누군가 뭐라고 할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뭐라고 할지 몰라서였다. 그래도 앉았다. 회의는 평소처럼 흘러갔다. 일정, 리스크, 대안. 내 의견을 묻는 순간이 왔고, 나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목소리도, 말의 길이도 익숙한 수준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생각했다. 방금 한 말들이, 다음 달까지 이어지는 계획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계획에 포함돼 있을까, 아닐까. 질문은 생겼지만 묻지는 않았다. 사직서를 낸 사람은 질문을 아낀다. 괜히 상황을 앞당기고 싶지 않아서.


점심시간에는 늘 가던 식당으로 갔다. 메뉴판을 보면서 고민했다. 오늘은 덜 자극적인 게 좋을지, 아니면 그냥 먹던 걸 먹을지. 결국 늘 먹던 걸 골랐다. 사직서를 냈다고 입맛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오후에는 문서를 하나 정리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정리했다. 혹시 나 다음 사람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아무도 안 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두 경우 모두를 대비하는 정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안정시켰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애매해졌다. 사직서를 낸 사람은 칼같이 퇴근해도 될 것 같았고, 동시에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처럼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평소처럼 자리를 정리했다. 노트북을 닫고, 책상을 한 번 훑어봤다. 내일도 이 자리에 앉을지, 아닐지는 아직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 메일함을 다시 열어봤다.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접수 완료라는 말도, 면담 요청도 없었다. 그저 내가 보낸 메일 하나만 조용히 남아 있었다. 사직서를 낸 사실은 기록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다.


사직서를 낸 사람의 일상은 이렇게 이어진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덜 기대하면서.

끝났다고 믿기엔 아직이고, 계속한다고 말하기에도 어정쩡한 상태로.


사직서를 내도,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가장 이상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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