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에 대해 우리 모두 가해자다

by 야호너구리

쿠팡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댓글이 먼저 달린다. 분노와 규탄, 불매 선언. 누구는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하고, 누구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들을 읽고 나면 늘 같은 생각이 남는다. 나는 그 말들을 너무 쉽게 하고 있다는 생각.


나는 쿠팡을 썼다. 새벽 배송이 필요할 때, 다음 날 꼭 받아야 할 물건이 있을 때.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결국 클릭했다. 배송 시간을 확인하고, 가격을 비교하고, 결제를 눌렀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는 떠올리지 않았다. 떠올리지 않아도 물건은 왔고, 나는 편했다.


사람이 죽었을 때는 다들 조용했다. 애도의 말은 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구조를 묻는 질문도 금방 사라졌다. 뉴스는 다음 이슈로 넘어갔고, 댓글은 줄었다. 그때는 책임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복잡하다는 말로, 우리는 한 발 물러섰다.


분위기가 다시 달라진 건 개인정보 유출 소식 이후였다. 정확히는 유출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태도였다. 사과문은 있었지만 온도가 없었고, 설명은 있었지만 공감은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가 새어나간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쿠팡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다들 이미 몇 번씩 겪어본 일이다. 놀라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사고 이후의 말투, 책임을 밀어내는 방식, 아무 일 아니라는 얼굴이 분노를 키웠다. 실수보다 태도가 사람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정보가 새는 것보다, 넘어가려는 태도에 더 크게 반응했다.


청문회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도 이 구조 밖에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 쿠팡을 세게 몰아붙일수록 지지율은 오른다. 구조를 바꾸는 일은 오래 걸리고 표가 안 된다. 노동법, 하청 구조, 1인 가구의 생활 방식까지 건드려야 하는 이야기는 설명이 길다. 대신 특정 기업 하나를 지목해 때리면 장면이 된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좋아하고, 발언은 기사 제목으로 잘 뽑힌다. 문제를 고치는 일보다 문제를 때리는 장면이 더 빠르게 소비된다.


그 즈음 김범석 대표가 했다는 말이 계속 걸린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질문처럼 들리지만, 이미 과거형이다. 한때는 가능했던 생활을 이제는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약간 분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불쾌함이 먼저 올라왔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나는 그 문장을 곧바로 이해해버렸다. 이해했다는 사실이 더 기분 나빴다. 이미 그 말이 성립하는 쪽에 내가 서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쿠팡의 성장은 단순히 한 기업의 공격적인 전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계속 늘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으며, 노동시간은 여전히 빡빡하다. 늦게 퇴근하고, 혼자 밥을 먹고, 마트에 들를 여유가 없는 삶. 그런 생활 방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가 지금의 쿠팡이다. 빠른 배송은 욕심이 아니라 필요가 됐고, 편리함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됐다.


그래서 이 구조는 특정 회사 하나를 비난한다고 해결되기 어렵다. 정치도, 기업도, 소비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쉬운 선택을 반복한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 올린 셈이다. 분노는 순환되고, 시스템은 유지된다.


나도 그 고리 밖에 있지 않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다른 쇼핑몰들을 먼저 둘러봤다. 가격도 비슷했고, 품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배송비가 붙었다. 3,000원. 그 숫자를 보는 데 걸린 시간은 1초도 안 됐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을 닫았다.


그리고 쿠팡 앱을 열었다. 배송비는 없었고, 도착 예정일은 더 빨랐다. 손은 이미 익숙한 위치에 있었다.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 잠깐 멈칫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다음 날 도착이라는 문장이 모든 생각을 덮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가해자다”라는 말은 선언이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 누군가는 설계했고, 누군가는 묵인했고, 누군가는 이용했다. 역할은 다르지만 고리는 이어져 있다. 나는 그 고리 안에서 분노도 하고, 이해도 하고, 결국 다시 주문을 한다.


쿠팡이 없으면 불편해진다. 이건 사실이다. 그래서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못한다. 편리함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도덕보다 빠르고, 성찰보다 싸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가해자다. 그래서 이 문제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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