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눈을 감은 타조

by 야호너구리

사막에 머리를 박는 타조처럼 산다는 말이 있다. 보지 않으면 없는 거라고 믿는 태도.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시야에서만 지워졌다는 사실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잠깐은 편해진다. 잠깐은.


요즘의 나는 자주 고개를 숙인다. 일부러 바닥만 본다. 멀리 보면 계산이 시작되고, 계산이 시작되면 마음이 먼저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앞날, 노후, 이 선택의 유효기간 같은 것들. 그런 단어들은 숨을 조인다. 그래서 오늘만 본다. 오늘 출근했고, 오늘 퇴근했고, 오늘 밥은 먹었다는 정도까지.


회사에서는 다들 비슷한 자세로 앉아 있다.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질문은 많지 않다. 질문이 생길 만한 지점에서는 시선을 피한다. 다들 각자의 사막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개를 들면 폭풍이 보일 것 같아서, 일단은 박아두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됐다. 사막에 머리를 박는 타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걸. 타조는 위협을 느끼면 도망치거나, 땅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긴다고 한다. 적극적인 대응이다. 머리를 숨기는 게 아니라, 몸을 낮추는 쪽에 가깝다.


이 오해의 시작은 꽤 오래됐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가 타조가 머리를 덤불이나 땅에 숨기면 몸이 숨겨진다고 기록한 게 시초라고 한다. 그 기록이 돌고 돌아, 지금의 관용어가 됐다. 실제의 타조와는 상관없는 이미지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타조를 오해한 방식도 좀 억울하다. 회피의 상징처럼 쓰이지만,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뛰지 않고, 쓸데없이 싸우지 않고, 몸을 낮추는 선택. 멀리 보면 비겁해 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 보면 꽤 현실적이다.


요즘의 나는 타조에 조금 더 가까운 쪽일지도 모르겠다. 도망치지도 않고, 맞서지도 않는다. 일단 엎드린다. 상황을 본다. 숨을 고른다. 이게 해결책은 아니다. 다만 바로 쓰러지지 않기 위한 자세다.


언젠가는 고개를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사막은 그대로 있고,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잠깐 몸을 낮춘다. 바닥의 온도나 느끼면서. 아직 숨은 붙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서.


사막에 머리를 박는 타조는 없다고 한다. 대신, 사막에 몸을 낮추는 타조는 있다. 그 차이가 요즘은 꽤 크게 느껴진다. 회피라고 부르기엔, 이쪽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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