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애매하다. 젊다고 말하기엔 체력이 눈에 띄게 줄었고, 늙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이 많다. 38세, 38살. 숫자는 같은데 부르는 방식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서른여덟은 조금 문학적이고, 38세는 행정적이며, 38살은 그냥 생활에 가깝다. 요즘 나는 이 셋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쓴다. 덜 아픈 쪽을 고르듯이.
서른여덟의 아침은 대체로 비슷하다. 알람을 끄고, 커피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다. 아이스를 먹으면 몸에 안 좋다던데, 라는 말이 잠깐 스친다. 위가 차가워진다느니, 대사가 느려진다느니. 그런 이야기들. 떠오르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습관처럼 스마트오더를 누르고, 얼음이 가득한 컵을 받아 든다. 생각보다 많은 결심이 이렇게 사라진다.
출근길 지하철 광고판을 보면, 요즘은 에듀윌 광고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AI로 성의 없이 그린 듯한 얼굴들. 표정은 과하게 밝고, 메시지는 단순하다. 내 또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있더라도 너무 성공했거나, 아예 다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광고 속 인생은 늘 앞서가 있고, 나는 늘 그걸 구경하는 쪽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여전히 중간에 낀 느낌이다. 윗사람이 되기엔 부족하고, 아랫사람을 챙기기엔 애매하다. 신입사원이 온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나이 차이를 계산하게 된다. 몇 살 차이인지 바로 감이 안 온다. 숫자로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체감은 훨씬 크다. 말투 하나, 반응 속도 하나에서 세월이 갈라진다. 그래도 티는 내지 않는다. 이런 계산은 늘 혼자서만 한다.
보고서를 쓰다가 이게 정말 내 일인가 싶어 멍해졌다가, 회의실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혁신보다는 적응이 편해졌고, 도전보다는 참고서 같은 선택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틀리지 않는 방향을 고르는 데 익숙해졌다.
집에 돌아오면 풍경도 늘 비슷하다. 반쯤 마른 수건, 키 몇 개가 잘 안 눌리는 키보드, 정리하지 않은 영수증들. 냉장고에는 반쯤 남은 김치통이 있고, 유통기한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반찬들이 있다. 이 나이면 뭔가 대단한 걸 이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가끔 고개를 들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대단히 망하지도 않았다. 대단히 나아진 것도 아니지만, 악화되지 않은 정도. 그 정도면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서른여덟이 되니 비교도 달라졌다. 남들 인생을 보며 노골적으로 부러워하지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한다. 저렇게 사는 것도 이해되고, 이렇게 사는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안다. 대신 비교는 안쪽으로 향한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 차이를 계산하다 보면 괜히 피곤해진다.
결국 서른여덟은 포기의 나이라기보다는 조정의 나이에 가깝다.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덜 아픈 선택지를 고르는 시기. 꿈을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크기를 줄이고, 기대를 접기보다는 방향을 조금 바꾼다. 그 과정은 멋있지 않다. 조용하고, 티가 안 나고,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38세라는 숫자는 서류에 남고, 38살이라는 나이는 몸에 남는다. 그리고 서른여덟이라는 말은 이렇게 글 속에 남는다. 결국 나를 규정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오늘도 큰 탈 없이 하루를 넘겼다는 사실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광고를 보고, 나이 차이를 속으로 계산하면서도. 망하지 않고 버틴 하루. 지금의 나는 그걸로 아직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