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건 부끄럽다

by 야호너구리

일할 때는 누구보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려고 애쓴다. 폰트 크기 맞추고, 컬러 팔레트 고르고, 아이콘 하나에도 시간을 쓴다. 당연하다. 보여야 통과되니까. 보이는 게 전부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슬라이드 한 장에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여지느냐, 말아지느냐가 달려 있으니까.


그런데 내 글에는 이미지 하나 붙이는 것도 늘 망설이게 된다. 사진을 넣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빼버린다. 괜히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일까 봐. 말은 웃기지만, 사실 꾸미는 게 맞다. 제목도 꾸미고, 문단도 다듬고, 문장 끝도 계산한다. 이미 충분히 꾸미고 있으면서, 이미지 하나 더하는 데서 갑자기 양심이 튀어나온다.


요즘은 AI만 켜도 이미지가 뚝딱 나온다. 몇 줄 치면 그럴듯한 그림이 생긴다. 예전처럼 카메라를 들고 나가거나, 무료 이미지 사이트를 뒤질 필요도 없다. 다들 그렇게 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유난히 부끄럽다. 왜인지 잘 모르겠다. 편한 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가는 느낌. 혼자서만 괜히 정색하는 기분.


이상하다.


회사 일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내 글에서는 갑자기 부끄러워한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 글이 무슨 예술 작품이라고. 그냥 기록인데, 그냥 생각인데. 그런데도 사진 하나 붙이면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게 된다. 이건 낚시가 아니라고, 과시는 아니라고, AI가 대신 그려준 거라고 굳이 설명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일에서는 목적이 명확해서일 것이다. 통과시키기 위해 꾸민다는 걸 나도 알고, 보는 사람도 안다. AI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결과만 통과하면 된다. 반면 글에서는 목적이 애매하다. 읽히고 싶으면서도, 읽히려고 애쓴 티는 내고 싶지 않다. 솔직하고 싶으면서도, 솔직함을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다. 그 모순이 이미지 앞에서 멈칫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브런치에는 본명과 얼굴을 그대로 걸고 쓰는 사람들이 꽤 많다. 프로필에 잘 나온 사진 하나 걸어두고, 자기 이름 석 자를 당당하게 적어 놓는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못생긴 얼굴이기도 하고, 솔직히 유명하지도 않다. 굳이 본명을 써야 할 이유도 없다. 이것도 역시 부끄러움에 가깝다. 인기 있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얼굴부터 내미는 게 어색하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도 대충이다. 급하게 찍은 공중전화 사진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일부러 멋을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숨긴 것도 아닌 애매한 선택. 사진을 넣어야 한다니까 넣긴 넣었는데, 책임질 만큼의 용기는 없어서 고개를 살짝 돌린 상태다.


그래서 오늘도 글에는 사진을 안 붙인다. 텍스트만 덩그러니. 이제는 이미지 만드는 게 너무 쉬워졌는데도, 굳이 안 쓰는 쪽을 택한다. 말로만 버텨보겠다는 고집. 그게 순수해서인지, 시대를 못 따라가는 자존심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내 글에서는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쪽이 나한테는 더 민감하고, 더 쉽게 상처받는 영역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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