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를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들은 말이다.
장소는 트럭 뒤였다.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담배 피울 자리가 늘 애매하다. 어디든 눈에 띄는 것 같고, 누군가 보면 괜히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다들 구석을 찾는다. 나도 그랬다. 건물 뒤편, 주차된 트럭 뒤.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아니고, 가려주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였다.
그날도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쭈구리고 앉아서. 담배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잠깐 숨을 돌리고 싶어서였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시 들어갈 준비도 안 된 상태. 연기를 천천히 내뱉고 있었는데, 누군가 옆에 섰다.
아동 쪽에서 오래 일하던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늘 피곤해 보였다. 일을 많이 해서라기보다는, 오래 같은 방식으로 버텨온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했다. 처음엔 다 힘들다고. 열심히 하라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날은 달랐다. 인사도 길게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담배 연기를 보고, 그냥 말했다.
버티다 죽어요.
설명은 없었다. 조언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위로는 더더욱 아니었다. 겁을 주려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어조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트럭 뒤에 남았다. 담배 연기랑 같이.
나는 웃었다. 어색해서였을 수도 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였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왜 나에게 온 건지 잘 몰랐다. 그래도 잊히지는 않았다. 열심히 하라는 말들은 금방 사라졌는데, 그 문장만 남았다.
그 이후로 일을 계속했다. 버텼고, 별일 없는 척했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도 있었고, 마음이 먼저 무너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다들 그러는 줄 알았다. 이 정도는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쓰러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떠올랐다. 가장 힘들 때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 일도 없을 때. 하루가 반복되고, 큰 사고도 없고, 그냥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 말이 경고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쓰러지는 순간보다, 쓰러지지 않은 채로 계속 버티는 상태가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말을 못 들었다면 나는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과장이 아니다. 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니라, 계속 버티다가. 버티는 게 당연해진 상태로.
그 말은 나를 살게 해준 조언이라기보다는, 멈춰 보게 만든 문장에 가까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정말 버팀인지, 아니면 그냥 관성인지. 더 버티는 게 용기인지, 아니면 선택을 미루는 건지. 그걸 구분하게 만들었다.
그분은 아마 내가 그 말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트럭 뒤에서, 담배 하나 피우는 사이에 나온 말. 그래도 그 말은 남았다. 다른 말들은 다 사라졌는데, 그 문장 하나만 계속 돌아왔다.
버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았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게, 이 일을 계속하든 말든과는 별개로, 나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는 것도.
트럭 뒤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의 날씨도, 담배도 흐릿하다. 다만 그 말은 아직 정확하다. 버티다 죽어요. 그 말이 과거의 어느 날, 트럭 뒤에서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계산을 하게 됐다. 그 정도면, 그 말은 제 역할을 다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