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아하는 걸 잘 못할까

by 야호너구리

일하는 곳을 그만두고 새로 구직을 시작했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알림을 켜고, 이력서를 한 장씩 업데이트했다. 파일 이름에 최종을 붙였다가 최종2로 바꿨다. 경력란 문장을 조금 줄이고, 자격증 칸을 비우면 허전해서 다시 채웠다. 저장을 누르고, 미리보기를 누르고, 다시 저장을 눌렀다. 화면은 바뀌는데 내 생활은 잘 안 바뀌었다.


처음엔 이것저것 넣었다. 행정, 지원, 운영, 콘텐츠 같은 단어를 검색창에 넣었다가 지웠다. 지역을 바꾸면 공고가 늘어났고, 업종을 바꾸면 조건이 줄어들었다. ‘신입 가능’이라고 적힌 줄을 보면 잠깐 마음이 가벼워졌다가, ‘관련 경력 우대’가 이어지면 다시 무거워졌다. 버튼은 많았다. 저장, 지원, 닫기. 나는 저장을 더 많이 눌렀다.


이상하게도 연락은 사회복지 쪽에서만 왔다. 새로운 분야에 지원한 곳은 조용했다. 읽음 표시만 남았고, 다음 연락은 없었다. 반대로 사회복지 공고는 빨랐다. 지원서를 내고 나서 바로 “이력서 열람” 알림이 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이 한 박자 늦었다. 받으면 뭐가 바뀌고, 안 받으면 또 하루가 늘어날 것 같았다.


전화를 받으면 비슷한 질문이 반복됐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 어느 지역까지 가능하냐, 경력은 몇 년이냐. 나는 숫자를 정확히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숫자를 말하면 그 숫자가 나를 설명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데 질문은 숫자만 요구했다. 관련 경력 있으시네요 라는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문장은 칭찬이 아니라 정리였다. 분류표 같은 말이었다.


나는 내가 고른 공고로 옮겨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내게 오는 건 다른 공고였다. 내가 지원한 곳이 아니라, 나를 맞춰 넣기 쉬운 곳. 도전은 화면에 남아 있고, 연락은 다른 쪽에서 왔다.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을 떼고 산 지가 꽤 됐다. 이력서에서 그 줄을 지우고, 다른 줄을 덧붙이고, 이제는 다른 일을 한다는 말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다시 그 단어를 입력했다. 사회복지사. 자동완성처럼 뜨는 글자를 그대로 두었다. 붙였다가 떼어냈던 이름이 다시 붙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결심 같은 건 없었다. 연락이 왔고, 나는 약속 시간을 잡았다.


주변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쪽이 낫다고 말했다. 너는 그걸 잘 안다고, 해본 일이잖아, 다시 하면 된다고. 그 말은 대체로 선의였고, 그래서 더 거절하기 애매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늘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니까. 맞는 말은 반박할 여지가 적다. 그 대신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슴 쪽이 조금 먼저 내려앉고,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말을 듣고 나서 행동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행동이 먼저 나가고 나서 이유가 따라붙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들은 대부분 끝까지 가지 못했다. 좋아하는데 잘 못한다는 말은 변명처럼 들려서 잘 꺼내지 않았다. 좋아하면 잘해야 할 것 같고, 잘하지 못하면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건 생활 밖으로 미뤄두었다. 퇴근하고 하겠다고 생각했다가, 주말에 하겠다고 생각했다가, 언젠가 하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제일 편한 일정이다. 달력에 적을 필요가 없다.


사회복지사로 돌아간다는 건 후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복귀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나는 둘 다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선택했다고 말하기엔 입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쨌든 나는 다시 그 일을 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돌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찾지 못한 길로 들어가는 느낌.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시간들이 한쪽으로 밀려나는 느낌.


면접 시간을 캘린더에 넣었다. 알림을 켰다. 사회복지사라고 적힌 줄을 저장했다. 화면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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