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달 솔방울 Feb 22. 2023

변화의 시작, 옷장 비우기



첫째 임신과 출산, 오랜 모유 수유, 그리고 다시 둘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나는 단추가 달리지 않은 옷, 수유를 위한 절개가 없는 옷들을 입은 지 오래되었다. 2~3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옷장에 가득했다. 옷장을 열 때마다 멀미가 났다.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옷장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옷장 속을 그대로 파내어 모조리 갖다 버리고픈 심정이었다. 그러면 내 마음도 간결해진 옷장처럼 뻥 뚫릴 것 같았다.


28개월 첫째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단양에 갔던 날. 나는 태어난 지 80일 된 둘째를 바운서에 앉혀 드레스룸으로 데려갔다. 옷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친정 엄마에게 손녀딸 잠시 보여주려고 걸었던 영상통화는 엄마와 원격으로 함께하는 옷 정리로 이어졌다.

우선 엄마한테 보낼 옷을 추렸다. 대중적인 스트릿브랜드의 평범한 디자인 옷들은 지금 버려도 나중에 다시 사면 되지만, 디자이너에게 가져온 옷은 버리지 말라는 엄마의 말. 당분간 안 입을거고 내가 소화하기 부담스러운 디자인의 옷들은 엄마한테 돌려보내기로 했다. (엄마는 멋쟁이). 그렇게 엄마한테 보낼 유니크한 옷들이 옷장에서 꺼내졌다. 우체국 5호 박스(50~70L)로 2~3박스는 될 것 같았다.



목 늘어난 티셔츠, 고무줄 늘어난 바지, 보풀이 심하게 일어난 옷들은 의류함에 폐기처분하기로 한다. 10벌 정도 나왔다.


다음으로 기부할 옷들도 추렸다. 폐기처분해야하는 옷은 기부가 불가하다. 깨끗하게 입었고 세탁도 되어있어 내가 입지 않을 뿐 다른 사람은 입을 수도 있는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나 숲스토리에 '기부'할 수 있다. 판매한 수익이 소외된 이웃에게 간다고 하니, 의류함에 버리는 것보다 좋은 처리 방법이다.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는 건 덤으로 좋다.

친구들과 여행가서 샀기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그러나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6년간 박혀있던 옷. 20대때 잘 입었지만 어쩐지 이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들도 모아보니 산더미다. 기부하기로 한다.


과식 후 구역질을 하듯이, 너무 많아 소화되지 못하고 뒤엉켜만 있던 옷들을 옷장이 토해냈다. 그 토사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옷장을 열 때마다 속시끄러웠던 이유가 납득이 됐다. 입지도 않는 옷을 저렇게 갖고 있으니 옷장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대고 답답할 수 밖에.


엄마한테 보낼 옷, 폐기처분할 옷, 기부처에 보낼 옷들이 빠진 옷장은 다이어트로 군살을 덜어낸 신체처럼 한결 건강해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