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과 출산, 오랜 모유 수유, 그리고 다시 둘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나는 단추가 달리지 않은 옷, 수유를 위한 절개가 없는 옷들을 입은 지 오래되었다. 2~3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옷장에 가득했다. 옷장을 열 때마다 멀미가 났다.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옷장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옷장 속을 그대로 파내어 모조리 갖다 버리고픈 심정이었다. 그러면 내 마음도 간결해진 옷장처럼 뻥 뚫릴 것 같았다.
28개월 첫째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단양에 갔던 날. 나는 태어난 지 80일 된 둘째를 바운서에 앉혀 드레스룸으로 데려갔다. 옷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친정 엄마에게 손녀딸 잠시 보여주려고 걸었던 영상통화는 엄마와 원격으로 함께하는 옷 정리로 이어졌다.
우선 엄마한테 보낼 옷을 추렸다. 대중적인 스트릿브랜드의 평범한 디자인 옷들은 지금 버려도 나중에 다시 사면 되지만, 디자이너에게 가져온 옷은 버리지 말라는 엄마의 말. 당분간 안 입을거고 내가 소화하기 부담스러운 디자인의 옷들은 엄마한테 돌려보내기로 했다. (엄마는 멋쟁이). 그렇게 엄마한테 보낼 유니크한 옷들이 옷장에서 꺼내졌다. 우체국 5호 박스(50~70L)로 2~3박스는 될 것 같았다.
목 늘어난 티셔츠, 고무줄 늘어난 바지, 보풀이 심하게 일어난 옷들은 의류함에 폐기처분하기로 한다. 10벌 정도 나왔다.
다음으로 기부할 옷들도 추렸다. 폐기처분해야하는 옷은 기부가 불가하다. 깨끗하게 입었고 세탁도 되어있어 내가 입지 않을 뿐 다른 사람은 입을 수도 있는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나 숲스토리에 '기부'할 수 있다. 판매한 수익이 소외된 이웃에게 간다고 하니, 의류함에 버리는 것보다 좋은 처리 방법이다.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는 건 덤으로 좋다.
친구들과 여행가서 샀기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그러나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6년간 박혀있던 옷. 20대때 잘 입었지만 어쩐지 이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들도 모아보니 산더미다. 기부하기로 한다.
과식 후 구역질을 하듯이, 너무 많아 소화되지 못하고 뒤엉켜만 있던 옷들을 옷장이 토해냈다. 그 토사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옷장을 열 때마다 속시끄러웠던 이유가 납득이 됐다. 입지도 않는 옷을 저렇게 갖고 있으니 옷장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대고 답답할 수 밖에.
엄마한테 보낼 옷, 폐기처분할 옷, 기부처에 보낼 옷들이 빠진 옷장은 다이어트로 군살을 덜어낸 신체처럼 한결 건강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