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 상판을 하면 주방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까짓 거 잘 관리하면 되겠지 뭐. 예쁜 게 더 중요해.라는 마음으로 2년 전 멀쩡한 주방을 드러내고 반셀프로 이케아 주방을 시공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정말로 상판을 살살살 오일링 해드리며 모시고 살고 있다.
준비물을 준비한다. 목장갑은 필요 없다. 이케아 스토카뤼드 오일은 텍스쳐가 상당히 가벼워서 손에 들러붙지 않는다.
가장 먼저 물티슈로 상판을 박박 닦아준다. 그냥 닦지 말고 박박 닦아서 먼지나 이물질이 없게 닦아야 해.라고 깔끔좌(=남편)께서 명하셨기에 오늘의 조수인 나는 상판을 박박 닦았다.
사실 마스킹테이프 같은 거 안 해도 크게 상관없을 거 같다. 작년에도 마스킹테이프는 안 붙이고 오일링 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히 붙이고 작업해야 나중에 여기저기 덕지덕지 묻은 오일을 닦아내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라고 꼼꼼좌(=남편)가 말했다. 나는 잠자코 그의 옆에서 테이프를 뜯고 고정하는 걸 돕기로 한다.
꼼꼼좌의 마스킹 실력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자로 잰 듯 완벽하다. 인덕션, 벽면, 싱크대, 스마트콘센트, 수전이 닿는 부분까지 그의 꼼꼼한 스캐닝을 피해 갈 영역은 주방에 존재할 수 없다.
깔끔꼼꼼좌가 든 붓은 오일 속에 사뿐히 들어갔다가 나와 발레리나처럼 가볍고 우아한 동작으로 상판 위를 유려하게 누빈다. 우리까지 기름 범벅이 되진 않겠지? 긴장을 풀고 있던 상판 옆면이 헙, 당황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늦었다. 여긴 꼼꼼좌가 다스리는 주방이다. 옆면 기름칠까지 빼먹지 않는 꼼꼼좌. 과연 명불허전이다.
한바탕 붓질을 마친 깔끔꼼꼼좌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스킹테이프를 죽 주욱 떼어내며 성취감을 맛본다. 나는 깔끔꼼꼼좌의 업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며 오늘의 깔끔한 주방을 기록한다.
2023 추석 즈음. 202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