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아 둔 믹서기와 핸드블렌더 장에 넣기, 그릇 건조대에 뒤집어 둔 냄비와 프라이팬 제자리에 넣어두기, 아침 점심 먹은 설거지 하기, 식기 세척기 내부 비우기, 상판 위에 필요 없는 것들 정리하기. 고작 5평 남짓한 조그만 주방에서 할 일은 끊임없이 자가증식한다.
거실과 온 방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주방은 요리하고 밥 먹고 먹인 흔적들로 너저분하다. 보이는 심란한 풍경이 꼭 내 마음 같다. 15분이면 된다. 아주 뚝딱뚝딱 싹 치워 버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8개월 된 둘째가 부른다. 기저귀 갈아달라, 일어서고 싶은데 잘 안 되니 잡아달라, 심심하니 놀아달라. 33개월 첫째도 날 찾는다. 엄마가 의사 선생님 해라, 나를 진찰해 줘라, 타요 놀이하자 엄마가 로기 해라. 나는 믹서기 집어넣다가 로기가 되고 설거지를 하다가 뒤돌아서 둘째한테 까꿍 까꿍 노래를 불러준다. 청소기를 돌리고 싶은데 머리카락 1개 집어 버리고서 만족해야 한다.
100 분량의 주방 일 중에서 10, 20은커녕 1,2 씩 기어가는 속도로 일을 하다 보면 아주 속이 터진다. 사탄은 이렇듯 끝없는 집안일로 나를 분노하고 짜증 나게 하려 한다. 그러나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천국의 주문.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한다.' '티끌 모아 태산'. 사실 집안일이 다 끝나지 않아도 대단히 큰일이 나진 않는다. 언제 다해! 하면서 화를 내다보면 마음이 어두워져 오히려 치울 의지가 더 꺾이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그래도 좋다', '괜찮다'라고 나를 다독인다.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간 다 하게 된다. 그릇 2개 닦다가 손의 물을 털고서 책 한 권 읽어주고, 다시 숟가락 3개 닦고 뽀로로 놀이하다 돌아오고. 그러다 보면 80 남았던 주방 일이 70, 60, 40이 된다.
사탄은, '0이 되고 완벽하게 깔끔한 주방을 봐야지!' 하는 강박을 자꾸 불어넣는다. 그러나 남은 일이 0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정말이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여 주셨지만 우리의 죄는 늘 0이지 않고 자꾸만 게이지를 올리다가 다시 회개하러 오곤 하지 않는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 '해도 해도 끝이 없네'라는 좌절감보다 '나는 목표한 방향으로 가는 행동을 하고 있어'라는 안도감이 마음에 번진다.
내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이런 사고 전략이 나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