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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솔방울 Aug 03. 2023

훔친 시간에 글을 쓰는 여자


  아침 6시 반. 함께 시편을 필사하는 멤버들은 오늘 43장을 필사하는 날이다. 하지만 얼마 전 셋째를 임신할 뻔했던 간담이 서늘한 해프닝의 여파로 인해 며칠간 필사를 밀린 나는 오늘 시편 41편을 썼다. 42편 1절을 이어서 쓰다 말고, 출근하는 남편 복숭아라도 깎아서 싸 줄까 하고 주방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들려오는 반갑고도 귀여운, 아니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둘째의 옹알이 소리.


  에-! 에-!


  푸짐한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엎어져 있으면서도 배밀이는 하지 않던 둘째 공주님이, 며칠 전부터 엎어져 있다가 두 팔로 바닥을 밀고 짧은 상체를 세워 스스로 앉기 시작했다. 머리, 몸통, 다리 통통한 삼 등신 몸매를 뽐내는 둘째는 이제는 누워서 울지 않고 꼬물딱 꼬물딱 앉아서 엄마를 부른다. 신랑이 잠시 둘째를 돌봐주는 사이 나는 호다닥 부엌으로 가 복숭아 도시락을 싼다. 탁. 탁. 나무 도마에 대고 복숭아를 자르는 소리. 그리고...


  도도도도...


  첫째마저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


  아침 7시 반.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나의 자유가 끝나는 시간. 나는 아이들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틈틈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나의 자유를 한 모금씩 빨아본다. 고된 업무에 지친 노동자가 달콤한 커피 한 잔을 들이켜며 정신을 차려보듯이. 아아 그러나 양심은 이렇게 말한다. 내려놔. 휴대폰 내려놔.


  싫어. 싫단 말이야. 잠깐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싶어.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내가 뭐 애먼 짓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어른으로서 어른과 소통하고 싶어. 육아 말고 다른 주제로. 그럴 수 있는 장이 여기뿐이잖아. 좋아 좋아 그럼 인터넷 안 하고 메모장에 글 쓸게. 영상 편집을 하든지! 그건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잖아. 의미 있는 일이잖아! 내가 애들 버리고 나간다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도 안돼?


  양심은 단호하다. 단호한 양심의 눈총이 따갑다. 나는 눈 딱 감고 휴대폰을 식탁 위에 탁 올려놓는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놀이매트 위에서 꼼지락댄다. 가는 길에 기저귀 하나 쓱 집어서 아이들 옆에 앉는다. 둘째 기저귀 갈아주고, 첫째 유아변기통 비워주고. 신랑 나가기 전에 깎아둔 복숭아를 가져와서 첫째는 포크로 찍어 먹이고, 둘째는 숟가락으로 긁어서 먹이고.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첫둥이의 부은 얼굴이 귀엽다.


  머릿속에 쓰고 싶은 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바로 적어두지 않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 같다. 답장할 카톡이 오진 않았을까? 앨범 용량 정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한번 눈 딱 감는다. 머릿속 '스마트폰 미련' 영역 '끄기'버튼을 누른다.


  사탄은 언제나 기쁨을 빼앗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아이들이 깨 있을 때 내가 내 일을 하려 들면, 나는 반드시 아이들이 귀찮아진다. 아이들이 깨어있을 때 글을 쓰려하면 나는 반드시 짜증을 낸다. 혼자 좀 놀라고. 왜 자꾸 엄마를 찾느냐고. (엄마를 찾지 그럼 누굴 찾아.)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잘 때(새벽이나 낮잠 시간), 운동 가는 길과 집에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길에서 글을 쓴다. 지금 이 긴 글이 쓰이는 시간도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이다. 도둑처럼 훔친 시간에 글을 쓰는 나는 엄마다.


  글 쓰는 나도 행복하고 육아하는 나도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의 하루는 글 쓰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길다. 그러니 글 쓸 시간만, 아이들이 잘 시간만 기대하고 바라본다면 내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은 의미 없는 육체노동, 괴로운 감정 노동이 되어버린다. 사랑이 빠진 고생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고생일 뿐이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글을 끄적이는 틈새로 아이들의 귀여운 순간이 다 빠져나가게 하는 것. 내 마음속에 찰나의 소중한 순간과 기쁨이 저장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사탄의 노림수다.


  오리를 오이라고, 크리스를 크이슈라고 발음하는 혀 짧은 33개월 첫째의 입에 걸리는 미소, 나를 쳐다보며 기분 좋다고 파닥파닥 휘젓는 8개월 둘째의 오동통한 팔과 손등. 생에서 아주 잠깐만 볼 수 있는 이 귀한 순간들의 귀함을 잊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내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글을 쓴다면, 나의 글을 통해 정말로 역사하시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내가 10일 동안 끙끙거려도 쓸 수 없는 글을 10분 만에라도 쓰게 하실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곧 아이들이 깰 것 같다. 나는 다시, 눈 질끈 감고 휴대폰을 저 멀리 던질 준비를 한다. 이 경주의 끝에서 손 내밀어 나를 반기시는 하나님을 기대한다.


2023.8.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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