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기도제목을 들고 금요 성령집회 다녀온 날
긴급한 기도제목을 들고 금요 성령집회에 나갔다. 아니 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차로 50분 거리. 곧 세 돌이 되는 첫째와 10개월 둘째를 데리고 교회에 가는 길은 다소 험난하다. 평소라면 50분 거리지만 1시간 20분~2시간까지도 걸리는 불금의 막히는 길을, 둘째의 칭얼거리는 소리와 첫째 취향의 천하장사 중장비 동요에 둘러싸여 간다. 귀도 고생이지만, 마음도 고생이다. 얼러주고 맞춰주고 놀아줘도 자꾸 돌아오는 건 울음소리와 투정이라서. 짜증이 밀려온다. 이렇게 짜증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러 가는 게 맞나. 하나님이 정말 이런 걸 원하실까. 짙은 의문이 든다.
집회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면 은혜가 쏟아진다. 정시에 기도하고 찬양을 시작할 때의 그 기쁨을 놓칠까 봐 나는 조바심이 난다. 늦을 것 같아서. 지금은 가장 막히는 시간. 도로 위의 차들은 내 마음과는 정반대다. 느릿느릿 움직인다. 1시간 가까이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왔는데도 반 겨우 넘게 왔다. 시간은 이미 집회가 시작된 8시. 네비를 보니 20~30분은 더 가야 한다. 늦었다. 예배에 대한 기대가 깨지고 진한 좌절이 퍼진다. 교회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을 틀고 찬양을 따라서 불러보지만. 이미 산산조각 난 마음에선 짜증만 부글댄다.
드디어 교회 출입구다. 나는 둘째를 안고 파파팍 뛰어들어간다. 남편은 차를 대고 첫째를 데리고 온다. 예배당 안에 들어왔지만, 마음에 번지는 평안은 반쪽짜리다. 예배를 여는 시간을 놓쳤다는 상실감이 아직도 마음에 자욱했다.
목사님이 '먼저 해야 할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나의 긴급하고 산적한 기도제목을 아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해 달라는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로 나아가는 기도를 할 것을 권하셨다.
통성 기도 시간. 어느덧 역할이 바뀌어 신랑은 둘째를 안고, 나는 첫째를 맡았다. 앞자리로 나가서 기도를 하는데 첫째가 종알종알 자꾸만 말을 건다. 엄마 나 그임(그림) 그이구 싶어. 엄마 나 숀톱에 아기상어 스티커 붙여됴. 엄마 휴대폰으로 구임 그이구 시퍼. 엄마 빠강섁으로 구일꺼야. 엄마 파양색 해됴.
기도를 하다가 뚝 끊기고 기도를 하다가 뚝 끊긴다. 짜증이 솟구친다. 참다못한 나는 속으로 에이씨, 에이씨를 연발하며 첫째의 손을 잡고 예배당 뒤쪽, 나가는 문 근처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이런 기분으로 기도해서 뭐 하냐. 집에나 가버려. 제기랄. 씩씩대며 걸어가던 내 눈에 둘째를 안고 기도하는 남편의 모습이 들어온다.
여보. 가자.
1시간이 짧다 하고 울며 불며 목이 터져라 기도하던 아내가 오늘은 기도한 지 10분도 안 되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집에 가자한다. 눈치 백 단 남편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묻는다.
기도 많이 했어 여보?
아니. 애가 계속 그림 그리게 해 달라. 색깔 바꿔달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괴롭혀서 기도 못해. 그냥 집에 가자.
여보 내가 애들 데리고 있을게. 여보 앞에 가서 기도 좀 하고 와.
알았어.
이 엉망진창인 정신으로 뭔 기도를 하겠나 싶었지만, 성령 집회에 왔다가 이렇게나 황망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건 더 끔찍했다. 남편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맨 앞에서 두 번째 줄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앉아서 다시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친한 사람과 있으면, 한 시간도 훌쩍 지나가죠? 기도할 때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하신가요?
내가 좋아하는 오랜 친구랑 있을 때를 떠올려봤다. 그 친구랑 있으면 왜 그다지도 시간이 빨리 가더라?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그렇다. 무슨 이야기든 해도 돼서 그렇다. 내 안의 어떤 마음이든 솔직하게 털어놔도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라서.
하나님 앞에도 그런 솔직한 기도를 해본다.
하나님 저는 솔직히. '하나님 당신과 친밀해지게 해 주세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합니다.' 하는 기도를 할 때 그냥 의무적으로 중언부언하는 기분이에요. 하나님 지금 제 마음에 진짜로 뭐가 있는지 아세요?
저는요. 진짜 힘들어요. 제가 씩씩하게 친정 가족들 기도를 해나가고 있지만요. 저는 너무나 좌절스러울 때가 많아요. 엄마는 예수님을 믿을 듯 믿을 듯 절대로 안 믿고요. 아빠와 동생도 악마들이 완전히 꽉 붙잡고 갖고 놀고 있는 것 같아요. 친정 가족들 삼촌 외숙모 고모 사촌동생 이름들 빠짐없이 써 놓았지만요. 지금 저의 그릇은요. 평생 원망과 상처, 우울과 무기력에 갇혀서 사는 우리 부모님과 동생 기도만 하기에도 너무 벅차요.
나는 나도 모르는 말(방언)로 하나님 앞에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나 힘들었구나. 내가 이렇게 지쳐있었던가. 울며 불며 기도하는데 애기띠로 둘째를 안은 남편과 첫째가 나를 데리러 두어 번 왔다 갔다 했었다. 노란 여름 원피스를 입은 첫째는 '엄마 기도하시게 방해하지 마'하는 아빠 말을 듣고 나서, 엉엉 우는 내 곁에 살며시 다가와 가만가만 옆에 있어주었다. 나는 첫째를 안고 엉엉 더 크게 울었다. 나보다 훨씬 조그만 첫째를 내가 안아줬는데, 어쩐지 첫째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잠시 잠깐 기도하다 고개를 들었는데 얼굴과 옷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있고. 시간은 어느새 30분이 넘게 흘러 있었다. 문 잠글 시간이 되었는데도 기도하고 있는 아줌마(=나) 때문에 퇴근 못하는 목사님이 계신 듯해서 짐을 챙겨 예배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기도의 용사'라는 마음으로, 부와앙- 전투력 넘치는 탱크처럼 집회에 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고양된 전투력이나 승리 이전에 '위로'였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 아니셨다면 '그래 더 열심히 기도해라. 그래야 기도를 들어주지. 생명과 열정을 불태워 오로지 기도에 박차를 가하거라.' 하셨을 텐데. 하나님은 나조차도 모르고 있던 나의 지친 상태와 결핍을 살피고, 당신의 자녀를 토닥이고 안아주셨다. 여유 없는 마음. 팍팍한 심정. 악한 영을 대적한다고 씩씩거리지만 실은 막막한 기분에 짓눌려 있는 땀투성이. 하나님은 나를 둘러싼 전쟁터 같은 상황 말고, 찌든 병사처럼 팍팍한 마음이 된 나를 먼저 보셨다.
얘야, 너는 용병이기 이전에 내 소중한 딸이란다. 나는 너의 솔직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 네가 열심히 기도해 주어서 고마워. 그런데 힘들면 나에게 먼저 털어놔 줬으면 좋겠단다. 더 말해보렴. 더 말해도 좋아. 얼마든지.
하나님한테 나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쓸 소모품 같은 군인이 아니라 당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간 마음에 있던 굳은 때, 묵은 때가 싹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까맣게 접힌 마음의 주름이 천사의 날개처럼 말끔하게 펴지는 기분. 긴장하여 딱딱한 돌덩이처럼 굳어 있던 마음에 따뜻한 봄비가 내린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 아이들은 피곤한지 곤히 잠들었다. 여느 금요일 밤과 같이 나는 남편에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여보 아까 기도하고 오라고 해줘서 고마워. 나는 막 전사 같은 기분으로, 우리 친정 가족들 휘두르는 악한 세력이랑 싸우러 나갔거든. 근데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속상하냐고, 나를 위로해 주려고 기다리고 계셨어.
집회에 가려고 아이들 데리고 차를 탄 순간부터 막히는 거리에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예배당에 들어간 순간,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던 순간에도.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긴장 상태였던 내 마음엔 짜증과 좌절, 분노와 황망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도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셨다. 마음을 아프게 했던 딱딱한 덩어리들이 부드럽게 풀렸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기도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어쩐지 피상적으로 기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와 같은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라도, 왠지 하나님 자녀에겐 어울리지 않는 좁은 마음 같아서 말하기 꺼려져도.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려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분이심을 기억해 보자.
예수님의 보혈을 힘 입어 하나님 앞에 모든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대하시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이런 친밀한 교제로 나아가는 걸 막으려는 악한 세력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리라.
2023.9.8.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