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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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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Jan 12. 2024

건조기의 두 얼굴



  오늘은 아기들 옷을 빨래하는 날이다. 꼬물이 자매는 놀이매트에서 인형을 갖고 같이 놀다가 다투다가 한다. 나는 빨래통을 거실로 갖고 나와서 놀이매트 위에 옷들을 쏟았다. 아가들이 외출할 때 입었던 활동복과 양말, 집에서 입는 실내복, 첫째 팬티, 둘째 턱받이, 가제 손수건과 아기 샤워타월들...

  빨래망에다 옷들을 욱여넣으면 이따가 편하겠지? 빨래망을 쓰면 물 묻은 채로 서로 뭉치고 엉겨있는 옷들을 뭉텅뭉텅 힘겹게 꺼낼 필요가 없이 망 하나만 꺼내면 되니까. 그리고 건조기 입구에 이 빨래망을 대고 지퍼를 열어 옷들을 줄줄 부으면 심지어 건조기가 옷을 다 말려주기까지 한다.

  아아, 건조기! 건조기는 얼마나 경이로운 문명의 이기인가!

  첫째가 태어났을 땐 집에 건조기가 없었다. 퇴근한 신랑은 하루에 수십 장 나오곤 하던 아기의 가제 손수건과 턱받이를 매일 밤 건조대에 탈탈 털어 널고 자야 했다. 목욕용, 일상용 수건들과 배냇저고리며 내의까지. 아기 빨래는 크기도 조그만 것들이 개체가 여럿이라 너는 데 하세월이었다.

  11월에 태어날 둘째가 뱃속에 들어있던 여름, 우리는 집에 건조기를 들였다.

  건조기는 두 돌 첫째와 신생아 둘째 양육으로 너덜너덜해진 우리 부부의 체력을 살뜰히 뒷받침해 주는 고마운 가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층 세탁기에서 꺼내어 2층에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건조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습도가 어떻든지 보송보송 마른 옷을 내어놓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아이들 빨랫감을 정리하던 나는 건조기에 대한 나의 감탄이 옅은 한숨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신생아와 두 돌 첫째 육아의 현실 일터를 한껏 든든히 지원하던 건조기는 '무슨 옷이든 주세요! 보송보송하게 말려드립니다!'는 당찬 목소리 뒤로 '근데 옷이 좀 줄어들어요.'라는 주의사항을 우물우물 얼버무리곤 하였다.

  건조기가 우물거리다 뱉은 옷들을 따뜻하고 보송보송해짐과 동시에 조글조글 쪼그라든다. 110 사이즈는 100, 90이 되고 90 사이즈 옷들은 80, 75가 된다. 처음 살 때 낙낙했던 핏의 옷들이 건조기 한 방에 꽉 끼는 핏으로 바뀐다.

  나는 둘째의 턱받이와 가제 손수건, 팬티, 양말 등 좀 줄어들어도 그닥 치명적이지는 않은 옷들을 빨래망에 넣었다. 그리고 에고고, 체념하듯 한숨을 쉬며 빨래망에 넣은 것보다 두 배는 더 되는 부피의 내복과 활동복, 목욕수건 등을 한 아름 안고 가서 세탁기에 넣었다. (우리 집에선 목욕수건도 건조기 금지품목이다. 두꺼워서 저도 잘 마르지 않고 다른 옷들까지 덩달아 덜 마르게 한다.) 빨래망에 든 것들은 건조기에게 맡길 것이고, 그보다 두세 배 큰 부피의 옷가지들은 내손으로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널어야 할 것이다.


  건조기 뚜껑에 덕지덕지 붙은 먼지들을 보니 필터 청소의 날이 또한 다가왔나 보다.

  건조기가 말려준 보송하고 조글조글한 가제수건들을 바라본다. 나는 문명의 이기에 감탄하고 적응해 가는 한편, 물 먹은 빨래를 손으로 탈-탈- 털어 쫙쫙 펴지게 널어 반듯하게 말리는 감각의 감칠맛을 또한 맛본다.

  세탁기도 나오고 건조기도 나왔으니, 언젠가는 빨래를 개켜주는 기계도 탄생하지 않을까? 그 기계도 건조기처럼 두 얼굴을 갖고 있겠지만, 날마다 어질러지는 집안 곳곳에서 전투를 치르는 나로서는, 그 기계의 단점에 또한 흐린 눈을 하고 살아가지 않으려나.




우와!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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