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일상을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2022년 6월 동생(시누이) 결혼식 때 21개월이던 첫둥이가 링베어러를 했는데, 그 모습을 고마운 지인분께서 찍어서 보내주셨다. 풍선에 연결된 반지 바구니를 들고 가다가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살짝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유튜브에도 저장하듯 올렸던 해당 영상이 몇 달에 한 번씩 전세계 알고리즘을 탔다. 그때마다 1000명이 무슨 막대사탕 값인 것처럼 구독자 수가 미친듯이 늘었고, 2024년 2월 현재 약 12.6만 명의 사람들이 해당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눌렀다.
콘텐츠를 연구하고 팬들과 소통하며 정식 루트를 따라 채널을 키워 온 유튜버라면, 구독자가 1만 명만 되어도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고 모든 영상의 조회수가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의 일상 기록소인 <까꿍꼬> 채널은 성격이 특수하다. 알고리즘을 탄 영상 하나의 조회수만 폭발적이고 그 이외의 영상들은 조회수도 댓글의 수도 그때그때 들쑥날쑥하다. 구독자 수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수치다.
거의 모든 것이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수입과 복지가 안정적인 초등학교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에 늘 꿈꾸던 직업은 피디나 리포터, 기자 등 연출가나 제작자, 창작자였다. 그렇기에 만약 내가 나의 노력으로 이 채널을 키워 왔다면 나는 내 힘으로 내가 꿈꾸던 꿈을 이루었다는 교만한 마음에 흠뻑 젖었을 것이다. 하나님 이야기를 할 생각은 1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늘리기 노하우 알려드립니다, 같은 수로 또 다른 팔로워를 모으려는 얕은 수를 부리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전개는 불가하다. 거저 받은 실버버튼이라 진짜로 노하우 따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자부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딸이 감히 상상도 못한 엄청난 선물을 주시되 섬세한 장치를 고안하셨다. 그 장치란. 내가 내맘대로 열심히 편집하여 올린 영상 말고, 내가 하나님께 붙어있으려고 발버둥치며 살 때 기록하듯 무심히 찍은 영상들의 조회수를 폭발시키시는 것이다. '매사에 네 힘 빼라' 하신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나'를 존중하며 사는 게 주인의식이라고 하지만, 진정 나를 살리는 참된 주인의식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아무튼. 조회수가 들쑥날쑥하고 구독자가 전세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 채널은 타겟층이 명확하지 않아서 광고나 협찬 제안도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 '이상한 콩고물 기대하지 마.'하시는 듯하다. 전세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우리가 전할 의미 있는 메시지는 복음 뿐이다.
아아, 이제 알겠다. 하나님이 나한테 기대하시는 고민은, 어떻게하면 우리가 더 흥할까,가 아니고. 어떻게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더욱 드러날까, 이겠구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나의 우상 되지 않기를,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더 좋아하는 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큰 선물을 주면서도 자녀가 '자부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장치를 고안하신 하나님 마음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괜찮다 솔아. 네가 나한테 삶을 내어 맡긴다고 내가 너의 개성을 결코 망치거나 해치지 않는단다. 그걸 너에게 준 게 바로 나인걸. 너의 고집과 이기심, 아집 그런 것들이 내가 네 안에 심은 보물들을 제대로 빛나지 못하게 하고 있어. 그러니 나를 믿고 나한테 인생의 방향타를 내어주렴. 하시는 것 같다.
실버버튼 받은 후 5달 정도가 흘렀다. 친구가 추천해서 봤던 영화 '소울'의 끝부분 장면이 생각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조는, 꿈꾸던 재즈 클럽에서 최고의 밴드와 첫 공연을 끝내고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선배 뮤지션 도로테아에게 묻는다.
"와! 너무 멋진 공연이었어요! 내일은 우리 무엇을 하나요?"
"뭘 하긴 뭘 해. 여기로 출근하지. 그리고 연주하고. 다음날 또 나와서 출근하여 연주하고."
꿈에 그리던 일을 하게 되었으니 내적, 외적으로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했던 주인공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실버버튼을 받으면 진짜 대단한 거 아니야? 와 너무 좋겠다! 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실버버튼이라는 걸 받고 나니, 원하던 직장에서 공연을 하게 된 소울의 주인공이 마주한 것과 똑같은 상황임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매일 아침 밥을 지어 새끼들 먹이고, 도시락 싸서 신랑 손에 들려 보내고, 책 읽거나 글 쓸 시간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고, 찬송가 틀고서 어둠을 물리치고. 내 마음 속 기쁨을 빼고 실버버튼은 내 삶에 거의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성취로부터 오는 마음 속 기쁨도, 푹한 날 내린 눈처럼 금세 빛바래고 녹는 거였다.
실버버튼 받았어. 그래서 뭐? 영상을 더 열심히 찍고 편집해서 올려서 더 많은 구독자를 모으려고 노력해야 해? 골든 버튼 받고, 다음은 다이아 버튼을 목표로? 그런 목표를 내가 이룰 수도 없지만, 그런 목표를 세우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면 순간순간 성취감이 주는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삶이 궁극적으로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
세상은 우리한테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든 내 눈 앞의 장면이 무엇이든 내 손에 주어진 오늘의 과제가 너무 소소하고 보잘것 없게 느껴져도, 이미 은혜 그 자체인 삶을 누리며 기뻐하며 살라고 하신다.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 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ㅡ영화 소울 중에서.
나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은혜에 감격하고 찬양하며 보낼 때에만 기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산다고 하나님이 나를 함부로 다뤄도 되는 짐짝이나 노예처럼 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 나는 딸이다.
하연이 하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처럼(그리고 그 선택을 망설이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집과 이기심을 내려놓는 훈련을 시키신다. 그리고 그 후에는 나의 개성을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려주신다.
그럼에도 오늘도 잠시도 매 순간도 하나님께 내 삶을 온전히 내어 맡기기 망설이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본다..^^...좋은 길, 어려운 길, 유일한 생명의 길.
2024.2.2.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