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10월 25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타일 철거(철거한 타일 폐기물 처리까지 포함한 비용 25만 원.)를 철거 업체에 문의해두었었다. 그런데 주방을 철거한 토요일 저녁부터 신랑과 아버지가 주방 타일을 만져보고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들을 검색하더니, 둘이서 타일 철거를 직접 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것 같으니, 업체에 주는 25만 원 절약할 겸 업체 예약은 취소하고 DIY로 진행하자는 제안이었다. 타일 철거 작업 예정일 전날 밤이었다.
나는 철거 작업자에게 주일 밤 또는 월요일 약속 당일 아침에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일이 날아갔다고 화가 난 그가 우리 가족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손해를 입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러나 걱정은 믿음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해당 업체의 사업을 돌보셔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일하는 사업장이 되도록 인도해주세요. 업체 관계자들의 가정을 또한 지키시고 축복해주세요.‘ 이윽고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는 무척 쿨하게 오케이하고 타일 철거와 마감을 잘할 수 있는 팁까지 알려주었다. 감사했다.
월요일 아침. 거실의 자잘한 짐들을 현관 맞은편 방 안에 ‘때려 넣었다.‘ 좀 더 우아한 단어를 쓰고 싶은데 ’때려 넣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인테리어 진행을 위한 다음 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월아 네월아 깔끔하게 짐까지 정리하면서 일을 진행할 여유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신랑은 7개의 책장을 옮기고 돌리며 책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서로 마주 보도록, 부피가 가장 줄어들도록 조립(?)했다. 이후 신랑이 쿠O에서 주문한 ’보양 비닐‘, ‘마스킹 비닐’로 책장을 나름대로 꼼꼼히 보양했다. 이후에 있을 공정들(철거, 전기, 목공, 도배, 가구 설치 등) 가운데 책장 내부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소파도 보양을 했다.
보관이사를 했다면 역시나 거치지 않아도 되는 번거로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비용 절약이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업체가 할 일을 가족들이 노동력으로 메꾸어 준 것과 같다. 인테리어 업체에 문의했을 때 보양 비용은 20-30만 원가량이었다. 가족의 노동력 비용을 제외하고 계산한다면, 마스킹 비닐을 2만 원 이내 가격에 구입했으니 10배 정도 낮은 가격으로 보양 공정을 진행한 것이다. 그냥 짐을 다 싸고 편안한 숙소로 훌쩍 떠나 머물러 있었다면 더 편했을 것 같긴 하지만, 가족들 손으로 집을 직접 보양하고 바꿔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O튜브에서 "타일 셀프 철거"를 검색하면 많은 영상이 나온다. 신랑과 아버지 부자는 철물점에서 대못 하나를 사 오더니 아버지가 쓰시던 장도리와 못을 사용해 주방 타일을 제거했다.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는 오래 걸리고 힘이 들긴 했다. 접착제가 세게 붙어있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타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에 신랑은 사실 코로나 예방 접종으로 모더나 주사(2차)를 맞고 왔다. 1차 예방 접종 때 열이 나고 아팠던 신랑이다. 주사 맞고 타일 철거가 웬 말이냐고 했지만, 2차는 괜찮을 거라며 신랑은 대기하고 계시던 아버지와 2인조를 이루어 타일 철거를 시작했다. 나는 딸을 데리고 산책(=먼지와 소음을 피해서 피신) 나가고 어머니는 거실 베란다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식사를 준비하셨다.
오전 10시 30분쯤 시작한 DIY 타일 철거는 2시까지 계속되었다. 타일 철거 후 폐타일 잔해(마대자루 가져와서 직접 치워야 함.) 즐비한 주방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업체가 괜히 25만 원 받는 게 아니네.” 하며 껄껄 웃으셨다.
아닌 게 아니라 치워도 치워도 먼지가 계속 나오긴 했다. 빗자루로 쓸면 먼지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타일 철거를 하면서 큰 조각들은 곧장 폐기용 마대자루에 넣었는데도 잔해들이 많았다. 인생 12개월 차 우리 딸은 새로운 풍경이 신기해서 자꾸만 먼지 구덩이 속으로 기어가려고 했다. 당근 마켓에서 1 롤에 5천 원인가 주고 구입해 두었던 바닥 보양용 골판지 깔개를 주방과 거실 사이에 세워 두었다. 딸은 아쉬운 듯 종이 벽을 바라보았다. 허허. 정말 공사판이다.
오후 3시경. 어머니가 차려 주신 건강 밥상에 힘 입어 든든한 마음으로 이케아 추가 플래닝 미팅을 진행했다. 철거된 주방에서 진행된 약 1시간 30분가량의 미팅 시간 동안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다가, 모더나 2차 맞고 타일 철거까지 하여 지친 아빠한테 매달렸다가, 마지막에는 엄마인 나한테 와서 안아 달라고 놀아 달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오른손으론 인테리어 서류를 들고 넘기고 만들고, 왼팔로는 딸을 안은 채로 플래너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케아 주방 가구 설치와 관련해서는 다른 공정들과 맞물려 치수와 주문 일정 등 꼼꼼하게 확인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자신이 없었기에 플래닝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메모를 해 두었다. 기록한 내용들은 인테리어 진행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잘 알아도 메모, 잘 모르면 더더욱 메모가 답이다. 인테리어와는 1도 관련 없는 삶을 살아온 내가 이렇게 반셀프로 살면서 리모델링에 도전할 수 있었던 기적의 일면에는 ’기록‘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초보자에게 기록은 강한 무기다.
오후 6시부터는 10월 28일 목요일 종일 있을 목공 공정을 앞두고 목수님과 미팅이 있었다.
키친 핏 냉장고(깊이 70cm)를 깊이가 딱 맞게 넣고 싶은데, 이케아 가구는 깊이가 60cm이다. 우리는 냉장고가 들어갈 부분만 빼고 주방 벽에서 10cm 떨어진 곳까지 가벽을 세워 냉장고가 쏙 들어가도록 작업할 계획을 세웠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공정은 아일랜드 후드를 달기 위해 후드 설치면 천장에 구멍 뚫고 보강 작업을 하고, 자바라를 거기까지 끌고 오는 거였다.
목수님은 더 상세한 수치가 나온 구조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케아 플래닝 설계도가 나오는 대로 목수님께 공유했다. 목수님은 자재비와 인건비, 작업 내용을 설명해주고 목요일 오전 9시까지 공사 현장(=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주방 철거 후 마루가 없이 시멘트가 드러난 부분을 땜빵하는 작업도 필요했는데 그것까지는 목공에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받은 견적은 목공 작업 자재비는 27만 원, 성인 남성 목수 두 사람이 작업하는 인건비는 식대 포함 66만 원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내일 화요일(2021.10.26.)에는 전기 공정이 있다. 전기 배선 작업이다. 수요일에는 별도 공정을 잡지 않았다. 살면서 진행하는 리모델링은 되도록 빨리 끝나는 것이 좋지만,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잡았다가 한 공정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생기거나 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공사 일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계획 세우고 또 세워 보았지만, 그 일정은 전기 사장님의 일정에 따라, 목수님의 일정에 따라, 이케아의 정책에 따라, 우리 가족의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MBTI 마지막이 J인 나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계획을 세웠고,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했다. 일정을 예측할 수 있어야 문제에 대처하기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살면서 반셀프로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도 공사 일정을 매일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변동하는 작업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가족이 모두 잠든 밤. 90쪽도 넘게 생성된 아이패드 굿노트 인테리어 서류를 넘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뭔가 빠지는 게 있을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건 실수가 없도록 도와주시고, 공정 진행의 방향을 인도해주시고, 무엇보다 이 고생스러운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나의 힘듦에 남편과 딸, 가족의 소중함이 묻히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그제야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