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라는 단면 뒤에 숨은 숱한 밤들

성급한 판단과 과정의 존중

by oui


어떤 일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건 생각보다 고약한 일이다.


기획서의 첫 문장을 떼기 위해 커서의 깜빡임만 한 시간째 바라보거나, 아무것도 없는 화면 앞에서 '새 레이어'만 수십 번 만들었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밑그림도 방향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일은, 때로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여 보지만, 엉성한 초안을 마주하는 순간 창작의 의욕은 슬그머니 짐을 싸서 떠나버린다.


세상에는 이미 완성된 것들이 넘쳐난다. 서점 매대에 진열된 신간, 완벽하게 보정된 이미지, 수많은 수정을 거쳐 마침표가 찍힌 보고서들. 우리는 그것들을 소비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그 편리함 때문인지 ‘판단의 근육’만 유독 비대해진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결과를 놓고 말하는 건 참 쉽고도 가볍기 때문이다. 이미 지어진 집 앞에서 “창문 위치가 좀 애매하네”라거나 “완성도가 아쉽다”는 평가를 내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짧은 문장이 나오기까지 설계자가 며칠 밤을 지새우며 볕의 각도를 계산했을 시간은 흔히 생략되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매끄러운 결과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기 마련이다.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며 ‘이게 정말 최선일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밤들. 확신보다는 망설임에 더 가까웠던 수많은 선택지들. 완성이라는 목적지는 늘 자욱한 안갯속에 있고, 우리는 그저 발밑의 좁은 길을 더듬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누군가의 ‘완성’은 실은 수만 번의 ‘미완’을 견뎌낸 끝에 얻어진 귀한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진짜 문제는 타인의 판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도에 자꾸 나를 맞추려 들게 되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과정까지 변명하듯 덧붙이고, 아직 평가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의 생채기까지 미리 꺼내어 증명하려 애쓰는 상태.


그 흐름에 몸을 던지는 순간 삶의 기준점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이동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계산하느라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내 발 상태는 어떤지는 자꾸 뒤로 밀려난다.


남들의 속도에 맞춰 전력 질주를 하다 보면, 정작 내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성급한 말들 앞에서 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 보려 한다. 모든 지적에 즉각 반응하며 나를 고치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조금 늦게 이해하고 조금 다르게 만족하더라도, 그게 곧 ‘틀린 삶’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위안을 품어본다.


성숙함이란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능력보다, 판단과 나 사이에 잠시의 간격을 두는 태도에 가까운 게 아닐까.


모든 시선에 같은 속도로 대답하며 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의 빠른 판단이 곧 나의 성적표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에서 귀를 닫을지는 오롯이 내 쪽에서 정해보고 싶다.


다음에 누군가의 작업물이나, 혹은 뜻대로 되지 않은 나의 하루를 마주하게 된다면 즉각적인 비평 대신 물 한 모금을 먼저 마시는 정도의 여유를 부려보고 싶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결과물 뒤에 숨어 있었을 숱한 밤의 고민들을 가만히 짐작해 보면서.


그렇게 세상의 속도와 나 사이에 약간의 틈을 만드는 일이, 결국 나를 덜 소모시키며 조금 더 편안한 호흡으로 삶을 이끌어줄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