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이라는 이름의 먼지

관계의 익숙함과 소중함

by oui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건 참 묘하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와인이나 골동품처럼 저절로 깊어지거나 단단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 함께했다’는 사실이 면죄부라도 되는 양,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조심성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우리 사이에 뭐 이런 것까지 따져.”


언뜻 친밀함의 증거처럼 들리는 이 말은, 실은 관계의 결이 조금씩 마모되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우리 마음속에 은밀한 게으름을 부린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볼 것 같고, 조금 거친 표현도 찰떡같이 이해해 줄 거라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복기해 보면, 늘 그 자리에는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도 저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 같은 것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상대를 ‘그것(It)’이 아니라 ‘너(You)’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숙해졌다는 핑계로 상대를 하나의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라, 내 편의를 충족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될 때 관계의 생명력은 시들어간다.


매일 집 안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의 위치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상대의 존재를 풍경의 일부로 치부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종종 세월이라는 수치가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거라 착각한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라는 문장 뒤로 마땅한 예의를 슬쩍 감춰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는 단순히 피어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부단히 갈고닦아야 하는 능력에 가깝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의지가 결여된 관계는, 아무리 수십 년을 이어왔어도 껍데기만 남은 채 속부터 썩어가는 나무와 다를 바 없다.


언제부턴가 모든 인연을 끝까지 쥐고 가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걸 느낀다. 양팔에 힘을 잔뜩 주고 버티며 유지해야 하는 사이보다,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조용한 존중이 흐르는 관계가 훨씬 오래 마음의 결에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귀한 사이는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나의 실수를 마주했을 때 장황한 해명보다 맥락을 먼저 헤아려주고,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는 마음이 흐르는 그런 사이.


인간관계에서 시간은 결코 깊이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존중’만이 그 유효기간을 결정하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오래됐다는 이유로 조심스러움을 생략하지 않는 것.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마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


그런 태도가 깃든 인연은 굳이 밧줄로 꽁꽁 묶어두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머물러준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혹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붙잡기 위해 나를 소모하던 마음이 차츰 옅어진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 서로를 견뎌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틈에서 비로소 마음은 고요를 찾는다.


애쓰지 않아도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앞에서 굳이 나를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그 편안한 침묵 속에서 삶은 진정한 휴식을 얻는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흘러갈 인연은 흘러가고, 남을 사람은 결국 남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늘은 그저 내 곁의 ‘너’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당연함에 젖어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가만히 가늠해 보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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