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지 않아도 근사한 하루라는 여백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by oui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잠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으면 ‘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몸은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오늘 해내지 못한 일들의 목록이 조용히 줄을 서곤 한다. 휴식 중임에도 여전히 근무 중인 것 같은 이 기묘한 상태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은 어쩐지 성실하지 못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을 생산적인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하루를 낭비한 사람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쉼마저 계획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휴식 뒤에도 독서 페이지 수나 운동 기록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남기려 애쓴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증명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쉰 것 같다'는 안도감을 얻는 셈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사고와 상상력을 회복시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혹시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남들은 저 멀리 앞서나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자꾸만 등을 떠민다.


아주 멋진 풍경 앞에 서 있으면서도 카메라 렌즈를 먼저 들이대고, 구도를 바꾸고, ‘이 장면을 어디에 공유하면 좋을지’를 고민할 때가 있다. 정작 그 장면을 온전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순간들.


눈앞에 펼쳐진 세계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의 기록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삶의 가치가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증명되어야 할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한 박자 늦게 숨을 내뱉는 일,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그저 가만히 앉아 햇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시간들. 사실은 그런 쓸모없어 보이는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의 가장 부드러운 토대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외부의 요구나 내면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그저 ‘존재하는 상태’ 자체로 머물 수 있는 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성취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시간을 거창한 의미로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 매 순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를 누군가에게 내보이지 않아도 되는 삶. 부지런히 마음을 쓰는 것과 편안하게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 항상 충돌하는 개념은 아닐 거라 믿어본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의 끝에는 마음이 간질거리기도 한다. ‘오늘 도대체 한 게 뭐야?’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의 끝에 “그래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날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행복은 시간을 얼마나 촘촘하게 채웠느냐보다, 그 시간을 대하는 마음의 밀도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달리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는 선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굳이 변명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태도.


조금 힘을 빼고 살아간다고 해서 삶이 당장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여백 덕분에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진짜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근사한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넉넉함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텅 빈 시간 속에서 비로소 차오르는 나만의 호흡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할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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