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객관화
글에는 얼굴이 없다. 표정도, 목소리도, 말끝에 붙는 짧은 숨결조차 없이 오직 활자만 남는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장이 어떤 표정으로 쓰였는지보다, 내가 어떤 얼굴로 그 글 앞에 서 있는지를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 마음이 평온한 날에는 무심코 지나칠 문장도, 유난히 예민한 날에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가온다.
사실 글의 온도가 달라진 게 아니라 그날의 내가 달라졌을 뿐인데.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글의 의도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래서 어떤 글은 내용보다 감정이 먼저 남는다. 전달하려는 사실은 분명한데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굳이 걸리지 않아도 될 표현에 자꾸 시선이 머문다. “왜 이런 단어를 선택했을까?”, “굳이 이렇게까지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읽는 내내 문장의 의미보다 내 안의 일렁이는 감정이 더 분주해진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심리적 소모전이 되는 셈이다.
글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즉각적으로 반응하려 애쓰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화와 달리 글에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표정이 없고, 상대의 의도를 다시 물어볼 틈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내 감정이 서둘러 채워버리는 순간, 글은 사실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한 것이 되어버린다.
최근에는 글을 읽을 때 조금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한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확인해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에만 집중해 보는 것. 문장에 담긴 의미를 깊게 해석하기 전에, 사실관계부터 천천히 짚어보는 쪽을 선택한다.
모든 문장에 내 기분을 데려다 놓지 않기로 했다. 굳이 마음을 소모하면서까지 글 앞에 오래 서 있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은 글에 대해 무심해지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모든 글에 같은 온도로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쪽에 가깝다. 어떤 글은 가볍게 훑고 지나가도 되고, 어떤 문장은 굳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여유가 필요하다.
사실 이런 태도는 글을 대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일상의 모든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상황에 마음을 다 쏟지 않아도 된다.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는 항상 힘을 주어 몰입하는 것 말고도, 조금의 여백을 남겨두는 지혜가 있다.
글은 글로 두고,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며, 내 감정은 그보다 한 발 뒤에 세워두는 것.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오해들도, 예상치 못한 피로도 조금은 줄어든다.
마음을 앞세워 문장 하나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덧붙이기보다, 담담하게 내용을 읽고 필요한 것만 챙겨 나오는 것. 그 정도의 태도만으로도 하루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굳이 애써 깊이 해석하지 않아도, 매 순간 감정을 얹어 반응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잘 흘러간다.
조금 덜 소모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일. 그것은 타인이나 세상을 향한 냉소가 아니라, 나를 지키며 더 오래 평온하게 걷기 위한 선택이다.
오늘만큼은 글 앞에서 마음의 힘을 빼고, 그저 화면 위에 놓인 활자들을 조용히 응시해 본다. 그렇게 얻은 마음의 여백이, 다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담백한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