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둔 마음들

정직한 감정

by oui

일상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쉽게 내뱉는 말은 아마 “괜찮아요”일 것이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이 말 안에는 여러 마음이 섞여 있다. 조금 손해를 봐도 상관없다는 너그러움부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정도쯤은 감당할 수 있다’는 오래된 습관 같은 것들.


세상은 이런 태도를 반긴다. 둥글둥글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실제로도 이 말은 삐걱거리는 일상을 꽤 부드럽게 만든다. 불필요한 마찰을 방지하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을 줄여주는 마법 같은 윤활유 역할을 해주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 부드러움이 어디서 오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마감 직전, 동료가 미안한 기색으로 “조금 늦게 넘겨줘도 될까요?”라고 물어올 때, 내 일정 역시 빠듯하지만 입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한다.


“네, 괜찮아요. 제가 조금 더 서두르죠, 뭐.”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퇴근 후의 평온했던 저녁 시간은 조용히 사라진다. 밤늦도록 모니터를 마주하며, 정작 내가 정말 괜찮았던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밤을 맞이하곤 한다.


상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 ‘괜찮음’ 뒤로 숨어버리는 순간들도 있다. 누군가의 무례한 농담이나 선을 넘는 부탁 앞에서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적당히 웃으며 넘긴다.


그 자리에서는 매끄러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 한구석이 눅눅해진다. 불편하고 서운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예민해 보일까 봐 스스로를 먼저 단속해 버린 탓이다.


이런 마음의 무늬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누군가에게 밀려 넘어지거나 새치기를 당하는 상황. 상대 부모가 다가와 사과를 건네면 입은 거의 자동인형처럼 대답한다.


“아, 괜찮아요. 애들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곁에 선 아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금 놀란 얼굴, 무언가 억울함이 맺힌 눈빛. 상황을 매끄럽게 정리해 버린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을까.


아이의 감정을 보살피기도 전에 분위기부터 수습하려 했던 말이, 혹시 ‘참는 쪽이 언제나 편한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되지는 않았을까.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어른의 습관이, 정작 소중한 내 아이의 마음을 앞질러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 싶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진실"이라고.


이 문장을 곱씹다 보면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두었던 진짜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상황을 일일이 바로잡으며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과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만큼은 뒷전으로 밀어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무조건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스스로를 소모하는 일은 삶을 금세 지치게 만든다. 매 순간 타인의 편안함을 위해 나를 깎아내는 태도가 과연 미덕이기만 한 것일까.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한 박자 멈춰 서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 괜찮지 않다는 감정을 굳이 길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갖는 것. 그런 작은 틈새들이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내 마음을 가장 나중에 두지 않겠다는 조용한 약속을 해보고 싶다. 오늘도 습관처럼 “괜찮아요”라고 말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 말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소중한 마음들을 짓밟고 지나가는 수단은 아니기를 바란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근사한 모습보다 진짜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이어가는 일. 굳이 무언가를 쟁취하려 달려들지 않아도, 내 마음의 온도를 먼저 살피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온전해질 수 있다.


조금은 느슨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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