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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Jan 19. 2021

어쩌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올 가을쯤 계절에 어울리는 곡 하나 연주할 수 있을까

‘피아노를 한 번 쳐봐야겠다.’ 


도대체 이런 생각은 어디서 솟았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이 생경하다. 피아노를 쳐보겠다는 첫 문장을 써놓고도 의심한다. 과연 나의 진심일까. 끈기 있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수 있을까. 내 삶에서 어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경험들이 지금 이런 각오를 가능하게 했을까. 이 도전이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는다면, 그 이유들이 하나하나 이 도전기를 통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데 때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긴 하다. 쉰을 넘기기 전, 40대 후반에 시작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50 넘어서는 후회가 조금 더 커져있을 것이므로.  


피아노 앞에 앉아 본다. 이런 행위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지만 쑥스럽기는 하다. 내 옷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후 피아노를 배울 때 이웃에게 싸게 샀던 중고 디지털피아노다. 막 성인이 된 아이는 더 이상 피아노에 관심이 없다. 


우리 집을 구성하는 주요 가구는 책장, 소파, 테이블이다. 그게 전부다. 계절마다 배치를 바꾼다. 그러는 동안 피아노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쫓겨 다녔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한 자리를 지켰다. 그걸 이제야 눈치챘다. 현재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큰 쓰임이 없음에도 버려지지 않은 이유가 지금 나의 결심을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나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피아노 건반에 올려놓는 열 손가락은 그렇게 부자연스러울 수 없다. 굵고 뭉툭한 손을 건반 위에 어색하게 올려놓은 채 상상이 잘 안 되는 나의 연주 모습을 기어이 상상한다. 


나뭇잎들이 알록달록 물들어갈 무렵 어느 한가한 휴일 아침에 계절에 어울리는 곡 하나 정도 연주할 수 있을까.     


20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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