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겠지만 혼자서 해보려 한다. 물론,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면 아무래도 좀 낫지 않을까, 돈을 들여야 제대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다. 하지만 학원에 가게 된다면 ‘순수한(?)’ 취미생활을 하겠다면서 얼마간의 강제성을 떠안게 될 것이고, 취미는 노동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확신 같은 의심이 들었다.
퇴근 후, 동네 피아노 학원 시간에 맞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방금 이 문장을 쓰면서 중년 아저씨가 고만고만한 꼬마 아이들 앞에서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는 걸 상상했다. 학원의 강제성을 얘기했지만, 어쩌면 학원을 피하려는 기제가 슬며시 작동한 것은 아닐까. 피아노를 치겠다는 내 선언의 결연함은 오히려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고 뻔뻔함’으로 증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학원 기피는 나의 이 도전에 느슨한 결심의 혐의를 보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가면서 소박한 성취를 하더라도 기쁨은 배가 되지 않겠는가.
피아노 교본은 성인을 위한 초보자용이다.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건 피아노를 연주하려는 성인의 수요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뜻이다.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계기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새해’라는 것이 가장 큰 계기가 아니겠나, 추정한다. 어쨌거나 피아노를 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들, 어딘가에서 낯선 건반을 앞에 두고 씨름을 하고 있을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동지애를 느끼기도 한다.
교재를 만든 이는 입문 8개월 만에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을 연주한 이의 예를 들며 바람을 잡는다. ‘쌩초보’들을 자극하기에 이만큼 매력적인 말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삶의 경험은 그런 말에 쉽게 들뜨지도 혹하지도 말라고 한다는 것을. 피아노에 문외한이지만 무려 ‘조지 윈스턴’이라는 이름 앞에선 ‘씨~익’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연주의 완성도를 떠나서 8개월에 캐논 변주곡이라니. 축구 입문 8개월에 손흥민의 발끝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궤적처럼 슛을 날릴 수 있다는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피아노 연주자의 이름은 어느 정도 적절했다. 스테디셀러라는 그의 앨범 <December>는 내 아련한 성장기에 닿아있다. 답답하고 버겁던 어느 날(그땐 뭐든 그랬다)의 나에게 위로였다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피아노곡을 듣는다는 것은 내게 멀고 먼 세계의 일이었는데, 그의 곡은 감겨왔고 심지어 친근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하튼, ‘8개월 완성’이 가능할 것 같진 않지만, 그 아련한 위로의 느낌을 더듬어 기억해내고는 결심 또한 선명해진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의 위안이 내 속에 조그맣게라도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지금 피아노 앞에 앉게 만든 건 그런 것들의 축적에 의한 것일까.
교재 저자가 겨냥한 타깃은 정확히 나일 것이라 믿기로 한다. 배우려는 자가 믿어서 잃을 건 없다. 저자의 의도(가르침)에 충실히 따라간다면, 정말 올 가을쯤 기적처럼 ‘캐논 변주곡’을 연주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