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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Jan 24. 2021

'도레도레도레'

피아노 걸음마

악보의 윗줄은 높은 음자리가 아랫줄에는 낮은 음자리가 있다는 것부터 새삼스럽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막상 골똘히 들여다보면 낯설어진다. 이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을 상상하면 경외감이 일기도 한다. 


피아노 앞에서 곡을 만들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작업물이 대대손손 연주되고 명성까지 이루게 했다는 걸 당대에는 알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내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피아노 앞에 앉은 누군가의 끈질긴 노동으로 곡들이 탄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피아노 ‘초짜’의 신분으로는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콩나물 대가리(음표)를 오선지에 그려 넣는 어디서 본 듯한 모습에 나를 슬쩍 끼워 넣어 본다. 꿈같은 장면이다. 다수의 로망일 것이나, 내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다.   

‘높은 음자리표’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만에 시선을 두고 또 ‘높. 은. 음. 자. 리.’라고 발음해보는지 모르겠다. 악보가 매개된 어떤 활동과도 철저하게 담을 쌓아온 삶이 좀 후회됐다. 팍팍하게 살았구나. 악보가 개입된 삶이었다면 덜 팍팍했을까. 높은 음자리표의 매력적인 곡선에 잠시 빠져든다. 초등(국민) 학교 음악시간에 오선지에 정성스럽게 그려 넣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숙제였을 것이다. 매끄럽게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저 디자인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누가 최초에 저런 모양을 5 선지에 앉혔을까. 존경과 감탄을 보낸다.  


4분의 4박, 온음표, 2분 음표, 4분 음표…. 역시 다시 발음해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초·중학교 때 음악시간이면 특히 이론이 참 싫었다. 시험은 더 싫었다. 흐릿하게 이해한 뒤 시험을 치고는 곧 잊었다. 늘 막연하고 어른거리기만 했다. 음악과의 담은 그렇게 쌓였던 것일까. 한때 부모님을 탓하기도 했다. 내겐 왜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첫 연습은 낮은 음자리의 ‘도’와 ‘솔’ 그리고 오른손 연습이다. 손을 건반 위에 올리고 교재의 안내에 따라 눌러본다. 나의 생애 첫 피아노 화음은 왼손으로 낮은음 ‘도’를 짚고 오른손으로 ‘도레 도레’를 누르는 것이다. 날렵하고 길쭉하고 반들거리는 건반 위에 뭉툭하고 거친 손. 이 생경한 장면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희고 긴 손가락을 보며 흔히들 “피아노 잘 치겠다”는 선입견의 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 손에 작은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도레도레도레.” 입으로 따라 소리 내 본다. 도레도레도레, 걸음마하는 아기를 연상시켰다. ‘아장아장아장.’ 나의 피아노 걸음마다.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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