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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Jan 29. 2021

내 몸에 작은 변화들

내 손인가, 남의 손인가

왼손은 낮은 음자리 ‘도’와 ‘솔’을 오간다. 각각 ‘온음표’다. 한마디에 달랑 하나 그려져 있다. 1번, 5번 손가락이 부지런히 오갈 필요도 없다. 오른손은 ‘도’에서 ‘솔’까지의 4분 음표로 구성된 단조로운 음역이다. 교재가 맨 처음 주문하는 훈련이다. 


낮은 음자리와 높은 음자리를 같이 눌러야 화음이 발생하는데 양손은 함께 반응하지 않는다. 동시에 반응한 것 같지만 간발의 차이를 느낀다. 한편, 궁극적으로 아주 미세한 시간까지 파고 들어가면 ‘동시’라는 게 현실세계에 가능한 일일까, 하는 내 안의 항변도 일어난다. 마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 같은 ‘비동시성’. 

왼손 ‘도’와 오른손 ‘도레미파’를 짚는 손가락 끝의 힘이 균질하거나 평온하지 않다. 오른손에 신경을 쓰면 왼손은 어쩔 줄을 몰라 건반 위에서 어정쩡하게 바들거리고, 왼손에 마음을 두면 오른손가락 스텝이 꼬여버린다. 건반 위에서 길을 잃는 형국이다.   


‘계란을 쥐듯’이라는 자세는 피아노를 쳐본 일이 없는 이에게도 상식이다. 손끝을 세우고 손목을 들고…. 그게 되나. 신경 쓸수록 손은 저항하듯 굳어져버린다. 옆에서 회초리라도 들 선생님이 필요한 걸까. 


한 몸뚱어리 안에서 오른손과 왼손이 같이 또는 따로 역할이 있었을 터인데, 새삼 건반 위에서 조화와 협업을 따진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피아노는 좌우의 손으로 선율을 만든다. 오른손잡이라 오른손을 우대하며 살아온 삶을 잠깐 반성했다.    


참 뻣뻣했다. 예상은 했지만. 좀처럼 취하지 않던 자세와 동작에 뼈와 주변 근육이 긴장했다. 계이름을 하나하나 똑바로 짚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몸에 일어나는 이런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잘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다.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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