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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Feb 06. 2021

그대로의 자연 앞에서

-기승전 피아노

사흘간 출장을 다녀왔다. 피아노 도전기를 공유하겠다고 시작한 브런치에 갑자기 출장 간 얘기다. 용서하시라. “오늘도 피아노를 쳤어요. 잘 안 되네요.” 류의 얘기를 주야장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길지 않은 글이 어떻게 맺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자판을 두드린다.   


세계 습지의 날(2월 2일)과 입춘(2월 3일)을 앞두고 사진을 찍기 위해 남도로 향했다. 무슨무슨 날을 설명하기 좋은 사진 거리를 찾고 찍는 것이 나의 일 중 한 부분이다. (저는 매체에 소속돼 사진으로 밥을 벌고 있습니다.)


순천만 습지를 찾아갔다. 이곳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이 세계 5대 연안습지다. 그중 순천만이 2006년 맨 먼저 람사르협약에 등록됐다. 여기서 잠깐. “출장 간다” 해놓고 줄줄이 알만한 관광지 이름을 대면 “좋은 거 보고, 일도 하고 좋겠다”라는 게 주변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출장은 출장 이상일 수 없고, 일(노동)은 그저 일(노동) 일뿐이다.


오후 4시 무렵 순천만 습지생태공원 내 용산전망대에 올랐다. 넓은 습지가 조망되는 곳이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간조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물이 더 빠져나가자, 잘 알려진 ‘S자형’ 물길이 드러났다. 물길 주변으로 건강한 갯벌이 반짝거렸고,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것처럼 다양한 모습을 한 갈대 군락이 시선을 붙들었다. 저만치 홀로 떨어진 ‘솔섬’도 아우라(aura)를 품고 있었다. 눈길이 닿는 곳곳에서 경외감이 일었다.     

순천만은 저물녘 풍광이 유명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해가 기우는 동안 많이들 오갔다. “우와~” “참 좋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 이내 비슷한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나 역시 말을 잃고 내 눈앞의 자연에 빠져들었다. 사위는 저물어가며 노랗게 다시 붉게 물들어갔다.


작은 배가 황금빛 물 주름을 잡으며 지나갔고, 구름 사이에서 잠시 나온 해가 S자 물길 위에 풍덩 빠지기도 했다. 해가 사라지자 인근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던 흑두루미 무리가 잠을 청하기 위해 물길을 건너 갯벌로, 갈대숲으로 날아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참 조화로웠다.


문명 이전의 모습일까. 한없이 평온한 광경에 오래오래 스며들어 있었다. 내 안의 잡다한 생각들이 전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아지경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그러한 상태에 근접하지는 않았을까. 한 번씩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스스로 무드를 깬 탓일까. 딱 한 가지 생각이 두어 번 머리를 스치긴 했다.


‘이 근사하고, 경이롭고, 경외로운 순간에 가장 어울릴 만한 피아노곡은 뭘까?’   /yaja


           

*람사르협약

습지 보호를 위해 1971년 2월 2일 이란의 람사르에서 '물새 서식지로써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이 날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로 협약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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