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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Feb 14. 2021

연결된다는 묘한 느낌

바흐와 베토벤이라니...

낮은음자리의 ‘도’와 ‘솔’, 높은음자리의 도·레·미·파·솔을 응용한 첫 연습곡은 바흐의 ‘뮤제트(Musette)’다. 바흐(Bach)라니. 흔히 ‘나비야~’나 ‘학교 종이 땡땡땡~’ 정도를 아장아장 피아노 첫 걸음마곡이라 생각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성인이 처음에 ‘나비야’를 칠 수 있나요. 하하하.” 


교재의 저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세상의 때가 낀 성인의 허영을 적당히 채워주겠다는 배려로 해석했다. 악보는 단순했다. 원곡을 검색해 들어봤다. 그리 복잡한 곡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 눈앞의 악보처럼 조촐하고 간결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심한 성인 초보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갈대 같은 의지를 꺾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과 의도가 더없이 고맙게 읽히는 것이다.    

더듬더듬 따라서 쳐본다. 왼손은 도와 솔을 천천히 오가고, 오른손은 “솔~파미레도”를 반복하며 전개되는 계이름을 꾹꾹 짚었다. 초반부 한두 소절에 낯설지 않은 곡임을 알아챈다. 손가락은 여전히 건반 위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들어봤고 그와 비슷한 음색이 나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가벼운 희열을 느낀다. 


피아노를 앞에 두고 짓궂게 쿵쾅대던 것이 전부였던 나다. 겨우 한두 소절을 바들바들 떨며 어설프게 치고 나서 기대하지 않았던 성취감이라니…. 나란 인간을 채워주며 즐겁게 했던 것이 이다지도 없었던가. 난 너무 메말라 있었던 걸까. 이렇게 쉽게 기쁨을 느끼는 것이 나란 존재인가.  


날 다독이고 위로를 하는 것이 그리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피아노 한 소절이 채워주는 정도의 재미와 기쁨은 내 삶의 도처에 있었을 것이다. 몰랐거나 때론 못 본 채하며 지나왔을 것이다. 둔해서일까.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그런 순간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싶어 좀 억울한 마음이다. 


<뮤제트>와 옆 페이지에 나란히 앉힌 악보는 <환희의 송가(Ode to joy)>다. 무려 베토벤이다. 바흐와 베토벤. 예전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할 때 봤음직한 ‘음악가와 곡의 연결이 잘못된 것을 고르시오’ 류의 기출문제가 문득 떠올랐다. 당시엔 몰라도 욱여넣듯 외웠던 상식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원곡을 아주 간소화시킨 악보지만 내 손가락으로 바들바들 감각하며 알아가는 ‘진짜배기’ 상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연결’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얼마나 간절해진 단어인가. 이미 고인이 된 먼 나라의 옛 음악가들이 내 생애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가능성은 없었다. 적어도 피아노 앞에 앉기 전까진 말이다. 뮤제트와 환희의 송가를 더듬거리며 치고 있는 내가 그들과 연결이 되고 있다는 묘한 느낌이 참 좋다.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바흐와 베토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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