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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Feb 14. 2022

환란 중에도 배는 금방 고파지고...

재택격리하다-3

‘재택치료’라는 이름으로 딸아이가 격리 중이지만 치료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저 격리의 시간이 약인 모양이다. 딱히 해줄 게 없어서 먹먹한데 한편 그래서 다행이기도 했다.   


지루한 하루를 슬기롭게 살아내는 법은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일이다. 평소면 출근해 일을 할 시간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좁디좁은 방에 격리된 딸도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듯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맘껏 보고 친구들과 긴긴 통화를 하지만, 무엇보다 현명하게도 잠을 오래 잤다.  


아침에 딸아이의 방 청소를 하는 동안 조심스러운 대면이 이뤄진다. 그 와중에 아이에게 감염되지 않겠다며 마스크를 단단히 챙겨 끼고 거리까지 유지하는 아빠의 모양새는 좀 민망하긴 했다. 동거 가족의 감염 확률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지 않나. 청소기를 돌리며 아이를 베란다로 내몰았다. 화장실 오가는 시간 말고는 방에서 하루 23시간 이상은 머무는 게 안쓰러웠다. 청소하고 환기하고 이불 털고 소독을 하는 동안 햇볕이라도 쬐라는 뜻이다. 베란다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더 잤다. 격리의 지혜다.    

종일 집에 있으면서 희한하게도 나의 지정석 같은 자리가 생겼다. 거실 벽면 앞의 바닥이었다. 낮은 접이식 탁자를 펴놓고 푹신한 쿠션에 깔고 앉았다. 꽤 오랜 시간을 이 자리에서 보낸다. 바닥에 드리운 햇살의 움직임을 응시하고 있다 보면 몽환적이 되어서 지금 이 시간의 일이 어제의 일인가 싶고, 어제 일들이 조금 전 일어난 일처럼도 느껴졌다.  


“이참에 푹 쉬고~” 지인들의 다정한 말을 들으면서도 ‘맘이 불편한데 푹 쉬어지겠나’하는 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격리 상황에 업무 성격상 재택근무가 제대로 될 리 없고, 손을 놓고 있자니 그것도 좀 아닌 것 같고.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타협이 필요했다. 탁자 위에 노트북 펼쳐놓는 것. 부장이 일을 주면 언제든 기꺼이 하리라.  


시간을 죽일 요량으로 책을 손에 쥐었다. 서너 페이지쯤 읽다 보면 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바깥 날씨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몸은 재택과 격리에 최적화한 상태를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슬기로운 격리생활’ 지침서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나. 4만 명에 육박하는 신규 확진 뉴스를 보며 재택이 가장 안전한 상태라 생각했다.  


보건소에서 뒤늦게 문자를 보내왔다. 재택치료 환자와 동거하는 나는 백신접종 완료자임에도 일주일 간 ‘자가격리’를 필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콕 찍어 ‘당신은 자가격리’라는 기관의 문자를 보는 순간에 깐 데 또 까인 것처럼 갑갑함이 배가됐다.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이 집이 전부라는 말이었다. 넓은 집에 살았다면 덜 답답했을까. 딸내미에게 덜 미안했을까.  


하루 일과 중에 철저하게 정확한 건 먹는 일이었다. 밥시간은 꼬박꼬박 찾아들었고, 끼니 사이에도 뭔가를 계속 먹었다. 이런 ‘환란’ 중에도 배는 금세 고파지고, 식탐이 솟구치는 이유는 뭘까.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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