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격리하다-4
아침부터 카톡방이 요란하다. 주고받는 소리의 간격이 촘촘했다. 한글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분주함을 짐작한다. ‘아주 신들이 나셨구먼.’ 약속이 정해지던 날, 나는 격리에 들어갔다. 이 사태가 아니었으면 신나게 나갔을 자리다. 아쉽다... 그저 흔한 모임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애틋해지는 것이다. 코로나가 일상인 시대에 코로나 이전의 일상들이 낯설어지고 만다.
출근도 등교도 외출도 없는 격리자들의 집에선 게으른 하루가 시작된다. 청소기부터 든다. 청소가 필요했다기보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새삼 신기한 건 바닥에 뭉텅뭉텅 흩어져있는 이 먼지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것이다. 떠다니던 먼지가 새벽에 가만히 내려앉았을 테지만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모두 잠든 시간 먼지를 일으키는 어떤 생명체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고정좌석이 돼버린 나지막한 탁자 앞에 다리를 뻗고 앉는다. 오늘은 뭘 하나. 이런 질문 뒤에 맥락 없는 감각이 덤벼든다. 시선의 발견이라고 할까. 거실 바닥에 아침볕이 비스듬히 들이친다. 선명한 빛과 그림자를 응시한다. 길게 드리워진 빛이 천천히 물러나며 짧아진다. 문득 빛의 길이와 각도를 보며 ‘몇 시 몇 분’인지 짐작한 뒤 시계를 본다. 생뚱맞기 이를 데 없는 행위지만, 뭐 한가한 시간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밥 때는 칼 같이 찾아오고 식욕은 솟고 소화는 안 됐다. 식후에 좀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안방 맨 구석에서 거실 맨 구석까지 집에서 가장 긴 직선거리의 동선을 찾았다. 그래 봐야 몇 걸음 안 되는 공간이지만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며 소화를 위해 최소한의 뭔가를 했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썩 괜찮은 발견이다. 빛을 관찰하고 집안에서 걷는 것. 이 사소한 것들을 루틴으로 만든다면 무료하기만 한 격리는 아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후 3시, 거실의 빛 그림자가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거실이 조금 어둑해지고 공간과 마음에 평안이 찾아든다. 하루의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고, 뭘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어서 ‘뭘 하지?’ 같은 일종의 강박에서 놓여나는 것이다.
느긋하게 책을 집어 들었다가 한참을 졸았다. 시끄러운 카톡 문자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쯤 왔고 언제쯤 도착하고 같은 들뜬 문자들이 약 올리듯 울려대는 것이다. 장소는 내가 아는 고깃집이다. 입맛을 다시며 마음이 저만치 달려 나갔다. “사진이라도 좀 보내 봐봐” 나는 아주 구린 문자를 보태고 말았다.
격리 중에 딸아이는 생일을 맞았다. 친구들과 설레며 짰던 생일날의 여행 계획은 진작 무산됐다. 절친 여럿도 확진이 모양이었다.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방에서 나온 딸은 “참 나, 이게 뭔가 싶네”하며 머쓱하게 웃는다. 생일노래를 신속하게 불러줬고 딸은 마스크를 쓴 채 입 대신 손바람을 일으켜 초를 껐다. 그러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특별’했던 생일임에 틀림없다.
이 날들은 훗날 어떤 상황에서 불쑥 꺼내질까, 궁금해진다.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