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격리하다-5
“고독을 모르면서 나이들 수는 없다. 혼자인 채로 태어났으면서 애써 고독을 모른 체한다면 인생은 더 어렵고 더 꼬이며 점점 비틀린다. 고독의 터널 끝에 가보고 고독의 정점과 한계점을 밟고 서서 웃는 자만이 ‘혼자를 경영’할 줄 아는 세련된 사람이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
때마침 읽던 책에서 만난 대목이다. 혼자가 아니었고 격리에 나의 의지가 개입된 것도 아니지만, 바깥에서의 관계와 의무에서 제법 거리를 둔 상황이어서인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우연히 읽게 되는 글들이 상상을 자극하기에 ‘격리’란 좋은 조건인 것 같다. 가령, 고양이와의 짧은 일화를 소개한 글을 보고는 (평소 나는 고양이를 키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고양이를 길렀다면 이 시간을 좀 덜 지루하게 쓸 수 있었을까, 하고 고양이가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계절이 묘사된 글을 접하고는 창밖으로 계절이 잘 드러나는 풍광을 볼 수 있다면 이 시간이 약간은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상상도 하게 된다.
격리 해제 전 PCR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전날 함께 검사받았던 아내는 ‘음성’ 문자를 아침 일찍 받은 터였다. 같이 받았으면 같은 시간에 결과가 통보되는 게 상식이 아닌가. 음성이라는 가정 하에 모레쯤 출근을 하겠다고 부서장과 얘기가 돼 있는 상황이었다. 늘 그랬듯 ‘설마’하는 생각이었으나, 지난주 딸아이의 확진도 ‘설마’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 아닌가.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것이다.
잠복했던 바이러스에 의한 ‘확진’인 건가, 아니면 ‘미결정’ 이후 재검사를 하느라 늦는 것일까. 불안했다. 보건소 문의 전화번호를 5개쯤을 확보해 돌려가며 전화를 걸었다. 모두 통화 중 다시 걸어도 통화 중이었다. 오기가 생겨서 한 자리에서 전화를 20여 통쯤 연달아 걸어보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수없이 많구나 싶었다.
오후에도 내내 통화 중이던 보건소의 직원과 극적으로 연결이 됐다. 검사를 받았는데 문자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불러주면서 나는, 수화기 너머에서 ‘양성’이라고 알려와 다시 한 주 동안의 격리는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휴대폰 번호가 어떻게 되죠?” 번호를 불렀다. “휴대폰 번호가 잘못 기재됐었네요.” 잠시 후 “음성입니다”라는 목소리가 건너왔다. ‘해제입니다. 이제 출근하세요’라는 말이었다. 홀가분하고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막상 또 그렇지는 않았다. 왜 그런 걸까.
딸의 재택치료 해제와 가족의 격리해제는 자축할 일이긴 했다. 동네 중식 맛집에 가서 짜장면과 짬뽕과 군만두를 포장해왔다. 혼자 방에서 먹는 마지막 끼니가 될 수도 있는 딸내미의 방 앞에 짬짜면과 만두를 특식으로 놓아주었다. 책상과 침대만으로 꽉 차는 좁은 방 안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과 베란다에서 아침볕을 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23시간을 머물렀던 딸이다. 코로나로 비싼 등록금 내놓은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긴 시간 방에서 지내는 일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딸이라 어쩐지 좀 수월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지분이 크다.
딸의 확진에도 아빠의 수차례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사실은 평소 '확실한 거리 두기'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가까이서 말을 안 섞는데 감염될 확률이 있겠느냐는 우스갯소리인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정말 그랬던 걸까’ 돌아보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녀지간이란 무엇인가?
가족이 거의 처음으로 재난상황을 함께 경험했다. 뭔가 같이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고도 생각한다. 낯선 환경 속에서 각자 관계를 맺어왔고 이해해오던 세계를 다시 들여다봤을 것도 같다. 그만큼 변화가 아닐까 싶다.
“딸내미, 아빠 음성 나왔다”는 말에 딸아이는 “축하해~”라고 하며 씨익 웃는다. 삶은 이런 것들로 이뤄진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