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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 Dec 29. 2023

먹고 사는 문제

경단녀의 밥벌이 이야기 04

밥벌이가 뭘까?

국어사전에서 밥벌이를 검색하면  

먹고살기 위하여 하는 일. 이라고 되어 있다. 재밌는 건 두 번째 의미다.


"겨우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일."


그렇다. 많은 사람이 두 번째 의미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올린 뒤 급격히 배가 불러왔다.

그럼에도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천안에 있는 남편과 바로 살지 않고, 강북 끝에서 파주까지

밥벌이를 위 출퇴근을 이어갔다.


결혼 준비에만 해도 모아둔 돈의 절반가량을 썼는데 아이가 나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해서, 출산 직전까지 다닌 다음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자마자 신혼집도 없이 그렇게 별거 생활을 했다.


집에서 파주까지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타고 편도 2시간 20분이 걸렸다. 배가 불러오니 출근 시간은 더 길어졌다. 다행히 오후 4시에 끝나는 회사라 평소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6시쯤 됐으나, 임신 중기를 꽉 채울 때까지도 냄새 입덧이 심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혹은 지하철 중간중간 내려 헛구역질을 하며 퇴근하느라 집에 가면 7시가 넘어 있었다.


회사다니는 일이, 돈을 버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혈혈단신 혼자일 때는 무엇이 두려울까.

그저 한 달에 이 백만 원 남짓 벌어도 나 혼자 삶을 영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입이 하나 늘었다.  그마저도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출산 뒤에는

밥줄이 끊긴다.


사실 임신 직전, 서른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출판일은 좋았지만, 단행본(당시 잡지팀)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과 자질 부족인가 싶은 열등의식에서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빠가 사라진 7살 이후, 인생을 살며 단 한번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거나 만족하며 살았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늘 고단했고, 부족했고, 갈망했다.


그러다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 덕에 잘생기고 학벌 좋은 남자들과 행복한 연애를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없던 자존감은 떨어졌고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내가 더 예뻤으면, 우리 집이 부자였으면 저 사람이 날 더 사랑할 텐데 하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못난 열등감이 이별의 원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못생겨서 돈이 없어서 헤어지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로인해 내실보다 겉모습에 더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이상한 남자들만 만나게 됐다.

 

허무하고 허탈했고, 조급한 스물아홉을 보내는 중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아니 그보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무얼 원하는지 찾고 싶었다.

마침 워킹홀리데이 갈 수 있는 나이가 서른 살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워홀을 갈까 싶어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남편을 소개받아 임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당장의 밥벌이보다, 미래를 고민하고 노력만 하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그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임신 이후에 뼈저리게 느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한 달이라도 더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이상 불평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내가 한 선택과 아이를 책임져야 했다.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휴직 전까지 모을 수 있는 돈과 육아휴직급여, 복직 이후에 아이 맡기게 될 비용 등등을 계산했다. 희망을 갖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남편의 부담이 크겠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 몫의 급여가 나오기도 할 테고, 육아휴직이 끝나면 바로 복직할 생각이었어서 출산 이후에도 생활비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집이었다.


천안에 있던 남편이 세 식구 같이 살 집을 알아보았는데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아파트 전세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고, 월세는 부담이 컸다.

둘의 돈을 모으고 영끌을 해서 도심형 오피스텔 전세 정도는 얻을 수 있었지만 주변에 놀이터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결국 만삭 직전, 남편 회사에서 제공되는 사택에 들어가기로 합의하고 집을 보러 갔는데

그냥 쭉 별거를 이어갈까 싶을 만큼 외진 곳에 있는 좁고 오래된 아파트였다.


세 사람이 함께 먹고 사는 것이 이렇게 벅찬 일이라니.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일까.

나는 그제야 어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어른인 척하는 아직은 엄마 집에 얹혀 사는 십대 어린이였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야 했다.

인생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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