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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 Dec 22. 2023

이거 혹시 사랑과 전쟁인가요?

경단녀의 밥벌이 이야기03

임신 전, 애아빠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누나는 시원스러운 성격이었고, 이미 결혼해 아이 한 명이 있었다.

누나가 물었다. 얘 왜 만나냐고.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남동생이 뭐가 좋아서 만나느냐는 진심어린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당시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겠지만 연애 초기여서 한창 좋았을 때였는데, 누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우리 엄마 만만치 않을 거야. 잘 생각해 봐."


초면에 동생 여자친구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봤어야 했는데,

나는 그 때까지 주변에서 악의에 가득 찬 사람을 만나거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례하거나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나에게 모질게 굴었던 경험치가 전혀 없었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베푼 만큼 다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척을 지거나 미움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내 인간관계는 그랬다.


남자친구가 임신 사실을 미리 부모님께 알렸다고 했을 때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인사는 드리는 게 예의인지라, 언제 찾아뵈면 될까 하는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심상치 않았다.


며칠 뒤 남자친구가 말해 준 날짜에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단정한 옷을 입고 과일 바구니와 꽃을 사서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 찾아갔다.

남자친구는 자기 엄마가 뭐라고 해도 절대 상처받지 말고, 조금 얘기하다가 말이 안 통하면 나오자고 했다.


임신 소식을 듣고 화가 나셨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어느 정도 이해도 했다. 남자친구는 어머니의 기대가 큰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다고 했고, 자라는 과정에서 크게 속 한 번 썪이지 않았단다.

내 눈에는 평범해 보여도, 누구나 자기 자식은 귀한 법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 갔을 때 어머니가 안 계실 줄은 몰랐다.

아버님만 어색하게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고, 앉으라 했다.

적막하고 무거운 공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


다니던 여상을 자퇴하기 위해 엄마와 학교에 갔을 때

반 학기를 꿇고 다른 여고에 복학했는데 선생님의 수행평가 채점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출석부로 뺨을 얻어 맞았을 때

두 상황에서 느꼈던 긴장과 불안의 결과 같은 불안을 느꼈다.

아마 서른인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불안이었을 것이다.


대역죄인도 아닌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님이 편하게 앉으라고 말하시는 순간,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화가 난듯 가방을 식탁에 탁탁 놓고, 방에서 옷가지를 풀어 놓고 씩씩대셨다.


"내가 진짜 오늘 안 오려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싶어서 왔어요. 얘기 듣기도 싫은데, 얘 아빠가 하도 들어와 보래서..."


인사도, 소개도 없이 처음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적대시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마 누구라도 겪기 힘든, 살면서 겪을 일 없는 상황일 것이다.


갈등이란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거나

모르는 사람끼리 어떤 상황에서 오해나 견해 차이로 생기는 것인데 본 적도, 대화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분노를 느낄 수 있을까.

그 정도의 분노는 가족의 원수, 피해자가해자 정도에게 느끼는 적대감이어야 되지 않을까.


나는 누구를 때린 적도, 죽인 적도, 사기를 치지도 않았는데

당시 어머님에게는 원수고 가해자였다.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멸시, 모욕, 고성 등의 상황을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PTSD마냥 그 상황을 생각하면 숨이 점점 차오르고 등이 뻐근해진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눈물이 터져 눈물에 잠식될 것처럼 슬퍼진다.  


어머님의 반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연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

결혼 전 임신했다는 것

이혼 가정이라는 것

전문대 졸업이라는 것

집안 형편이 별볼일 없다는 것


다섯 가지 이유로 나를 반대했고, 그러니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대화가 되질 않으니 가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집을 나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집에 오는 내내 울기만 했다.


억울해서, 화나서가 아니라 내가 들은 이야기를

아이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퍼졌기 때문이다.


임신 전 결혼 허락을 구하러 찾아뵀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혼 가정이라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아마 한 마디 더 붙이기도 했겠지.

"그렇게 이혼도 안하고 사셔서 자식들이 부모님을 그렇게 싫어하나 봐요?"

라거나

"누가 보면 제가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아들 달라고 찾아온 줄 알겠어요."

라거나

"당신 아들 같은 사람이랑 결혼 안해도 충분히 잘살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한테 우리 엄마가 이혼한 것에 대해 평가 받을 이유 없고요,

초면에 너무 무례하셨어요. 저하고 이 자리에 없는 엄마한테까지 사과하세요."

라고 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평소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갈등 상황 견디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이해하자는 쪽으로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무조건 불의다.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복학했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수행평가 채점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었고,

H중공업 노동자였던 김진숙 지도자가 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할 때도

여러번 집회에 참여했더랬다.

나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의 갈등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패잔병이었다.

아니, 싸워보지도 않았으니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샌드백이었을까.

배 속에 아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부당함에 맞설 용기를 켜는 스위치가 꺼져 버린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내 하소연을 듣고 혀를 찼다.

"아니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시어머니도 그렇게까지는 안하겠다. 돈이라도 주고 헤어지라던가."


사실 시어머니의 계속되는 반대에 더 화가났던 건 엄마의 반응이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되니까 네가 진심으로 잘 대해드려.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고 금방 허락하실 거야."

내 마음은 썪어 문들어져가는데 여기서 더 진심으로 잘해드리라니....


아빠 없이 키울 수 없으니 당연히 결혼해야지 했는데, 어느새 미혼모 보호 시설을 알아보고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도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사회생활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을 때는

그냥 이대로 죽어 버릴까도 생각했다.


남자친구는 부모와 인연을 끊겠다고 했고,

남자친구가 완강하게 나갈수록 나에 대한 폭언은 심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어떻게 극적으로 결혼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임신 5개월차에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결혼식 당일까지도 식장에 오네 마네 하셨고,

드레스 이모님이 당신한테 돈을 달라고 한 것(이모님은 내가 정신없어 보여서 어머님한테 가셨다고 했다.)에 대해서, 주례해 주셨던 선생님께서 내가 굉장히 아까운 인재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신혼여행 후 사온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 거침없이 화를 냈지만


어쨌든 그렇게 공식적인 유부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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