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작 Jan 05. 2024

지금 바로 퇴사할수밖에 없던 이야기1

경단녀의 밥벌이 이야기 05

하지만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정신의 탐색도 중요하지만 탐색이 일단락된 후에는 딴 생각 없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남다를 뿐 아니라 멜로디를 잡아내고 상쾌한 공기와 좋은 향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 예리한 오감이 지금 이 순간 전해 주는 선물을 만끽하라.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하라. 여러분은 지금, 바로 여기에 살아 있다!

_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다.

그 무렵 내가 책에서 이 문장을 읽었더라면 지금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만삭 한 달 전까지 회사에 다니고, 아이를 낳은 뒤 서울 조리원에서 2주, 친정에서 3주를 보내다가

남편 회사 사택에 들어가게 됐다.


낡고 허름한 신혼집에 새 가구는 고사하고 아이 낳기 전, 부랴부랴 처참하게 부서진 화장실 타일과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변기를 교체했다. 삭다 못해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싱크대도 전부 교체했다.

청소 업체를 불러 입주 청소를 했는데 너무 더러워서 5만 원 추가 비용도 드렸더랬다.


시어머니는 자가도 아닌데 헛돈을 쓴다며 나더러 낭비가 심하다고 했다.

자기 아들 돈이 아니라 나와 아이를 위해 내 돈을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그렇게 아이와 나, 남편 셋이 가정을 이루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 무렵의 나는 난파된 배를 탄 채 노도 속 한가운데 표류 중인 난민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리원에서 다들 순하다고 칭찬했던 아기는 온데간데 없고 아이는 밤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어댔으며, 이미 한 달 넘도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했던 데다가, 이사 준비와 살림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멘탈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도저히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없었다.

시간 맞춰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처녀 시절 거의 하지 않았던 요리도 하고 빨래는 하루 두 번 이상, 청소는 수시로. 육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 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게 고역이었던 나는 100일의 기적이라는 것만 믿고 그것만 바라며 살았다.


조리원에서 잠시 외출했을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것을 보고 봄이 가는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계절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끝내 100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고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까지 천안에서 파주까지 출퇴근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휴직 #경단녀 #경력단절

이전 04화 먹고 사는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