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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 Jan 12. 2024

지금 바로 퇴사할수밖에 없던 이야기2

경단녀의 밥벌이 이야기 06

출산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에 나오는 워킹맘을 상상했다.

아빠나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각자 열심히 회사생활을 한 뒤에

퇴근 후에 아이를 픽업하며,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산책을 하고 놀이터를 가고...

안락한 침대에 잠들며...

출산 3개월 뒤부터 복직하려면 빨리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나 맡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천안에서 파주가 지구에서 금성만큼이나 멀게 느껴졌지만 일단 복직을 하고 나서 포기하더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으니까.


우선 가까운 지인에게 알아봐야 했다.

엄마는 당신도 일을 해야 하니 일단 우선순위에서 제외 시키고,

당시 잠시 천안에 내려와 있는 이모나 청주에 사는 이모에게 물어봤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돌보미도 생각해 봤지만 어린 아기를 남편이 출근하는 아침 7시부터 남편이 퇴근하는 여섯 시까지 풀로 맡기려면 정부 보조금 지원이 10%밖에 안 됐던가 그래서 거의 내 월급의 8~90%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육아휴직을 하며 편집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네 월급을 다 돌보미한테 주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가 좀 자랄 때까지는 꼭 복직해서 버텨야 한다."

"애 크는 거 잠깐인데, 네가 그 기간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어."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돌보미 월급에 차비에 내 생활비까지 더하면 월급 초과였다.

마지막 카드로 엄마한테 부탁해봤다.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 한달에 150만원 정도 드리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요양병원 간호조무사인 엄마의 경력이 또 단절된다.

아직 어린 나는 경력단절이 되도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당시 50대 중반인 엄마에게 경력단절을 요구하는 건 엄마의 남은 인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나는 미치도록 일이 하고 싶은데 복직을 못하게 생겼으니.

밤에 아이를 재워 놓고 조용히 대책을 마련하고 싶어도 1~2시간에 한 번씩 깨는 아이 덕에

내 머릿속은 엉킬대로 엉켜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는 거였다.

직업 특성상 남편이 일하는 곳 역시 천안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나 업종을 바꾸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파주에도 꽤 큰 공장단지들이 있고, 하다못해 서울에도 직장이 많으니

파주나 일산, 경기권으로 집을 옮기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둘 다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회의적이었다.

이제 막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했는데 회사를 또 옮기고 적응하고... 그런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자기 월급으로 아끼면 세 식구 잘 살 수 있단다.

아이가 좀 크고 나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냔다.


나는 무력해졌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커리어가 사라지게 생겼는데, 내 절박함과 절망감에 대한 공감이나 안타까움도 없이

자기 월급을 아끼자니, 나중에 일하라니...


결혼한 지 이제 1년도 안 됐는데 앞날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럼 아이를 데리고 친정 옆으로 가겠으니 전셋집 얻을 돈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며 그것마저 반려됐다.


그렇게 복직도 못해보고 퇴사하게 되었다.   


산후우울증에 수면 부족, 퇴사까지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방긋방긋 잘 웃어주고 귀여운 아이를 보며 때때로 고단한 마음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과 일을 하지 못하니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이와 걷는 시간, 아이가 밟는 낙엽, 까르르 웃음소리... 

그저 그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면 됐는데 나는 왜 그런 것들을 행복해할 수 없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게 

처해진 상황 때문에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일을 해야만 했다. 아니 돈이 필요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어떤 일이든 할 요량으로 잡코리아를 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직업군을 추려본 결과, 학원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 등으로 

추려졌다. 하지만 늦게까지 수업해야 하는 직군이라 이 역시 포기. 


그러다 한 영어유치원에서 9-4시까지 근무하는 보조교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보았다. 

바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았고, 합격도 했다. 


드디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렇게 2월 구정이 끝나고 3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출근 이틀 전 아이와 내가 A형 독감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아이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급히 유치원에 전화해서 양해를 구했지만, 다음에 다시 보자고 답했다. 


하긴, 나같아도 입사 전부터 아이 때문에 출근 시기를 미뤄달라고 하면 입사 후에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못 나온다고 할 테니, 같이 일하기 싫겠지... 


그렇게 경단녀의 세월이 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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