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로운 시작 늙은 마음

_25년 결산과 26년의 각오

by 시작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음력으로 따져도 열흘이나 지났다.


지난 해부터 연이은 책 작업, 촬영, 마감, 사업보고서 준비 등으로 정신이 없었고, 2주 전 마감한 책이 드디어 나와서 다시 마음의 여유를 조금 찾은 것 같다.


사실 그동안 경단녀 청산한 지 3년 가까이 되었는데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아. 자존감이 살짝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사업보고서 때문에 결산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일하면서 작업했던 것들을 카운트해보니 신간 기획안 작성한 것만 2년 6개월 동안 120건. 2025년 한 해에만 작업해서 출판까지 한 책은 총 18권. 그 중에 순수 기획해서 출간한 책은 7권이었다. 그리고 그중 3권이 자사의 베스트셀러 1, 2, 3위를 차지했다.



image.png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책의 밀도와 개성, 디테일을 더 높이지 못했단 후회도 있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실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우리 회사 안에서나 1,2,3위지... 더 잘 팔릴 수도 있었는데 같은 속상함도 남았다.


그러나 후회해서 뭐하겠는가. 나는 또 내 앞에 놓인 일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기획을 발굴하고 또 신간을 만들어 내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


며칠 전 연봉협상을 했다.


처음 이 회사 면접 볼 때만 해도 레디메이드 인생의 P처럼 연봉이야 얼마든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 전에 면접 본 곳에서 번번이 나이 때문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공통된 질문들은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과 잘 일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그때 겨우 서른여덟살이었다!)


물론 면접관 분들이 나를 이력서 하나만으로 가늠할 수 없고, 면접관 입장에서 면접자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난 정말 진심으로 나이 때문에 누군가와 잘 못 지내 본적은 없었다.

나보다 나이 어리다고 언니 노릇 받고 싶었던 적도, 나보다 나이 많다고 배척한 적도 없었다.


그건 아마 1년 복학생이었던 빠른 년생이었던 나를 스스럼 없이 대해주었던 여고 친구들 덕분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 외 다른 조건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어째뜬 마지막으로 면접 본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사실 이전 출판사에서 제대로 된 내 기획을, 끝까지 단행본으로 만들어 본적이 없었으니 속으로는 내심 신입의 자세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더랬다. 초심은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역사 깊은 출판사들을 다녔기에 작가 라인업이 굳건했고, 두 번째로 일했던 회사에서는 잡지 팀이었기에 다달이 새로운 주제를 논의하고 그에 맞게 세팅만 하면 내 역할은 끝이었다. 책 기획부터 편집 출간까지 A to Z를 해 본적이 없었다는 게 나에겐 편집자로서 열등감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더더욱이 편집자로서 끝을 보고 싶어 복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열등감과 별개로 직장생활은 생활이고, 전쟁이고, 인습이었다.

예전에 김희선이 나왔던 드라마 <다음 생은 없으니까>를 스치듯 본 적이 있었는데, 복직하고 싶어하는 김희선에게 남편 윤박이 대충 이런 말을 한다.


너에게 직장은 자존감을 펼치고 싶은 곳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직장은 우리 가족 밥줄이야.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을 한다. 난 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전남편은 직장생활하는 걸 힘들어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저녁이 되면 소파에서 쓰러져 잤고, 밥 먹고 또 잤다.

코로나 시국까지 겹치면서 월급이 삭감되었고, 나도 아이를 재우고 부업 겸 감을 놓지 않기 위해 프리랜서로 출판 일을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끊임없이 복직이 하고 싶었고, 어설프게 끝내고 나온 경력을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전남편은 내 월급만큼 벌 수 있냐, 나는 못 그만둔다. 파주까지 가서 취업 안되면 어떡하냐, 일단 취업하고 그때 생각해보자. 와 같은 말을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취업도 하기 전에 천안에서 파주나 서울로 단번에 이사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나는 취업은 무조건 자신이 있었고(믿는 구석도 있었고) 내가 결혼과 육아로 8년을 포기했으니, 비교적 이직이 자유로운 직종을 가진 남편이 양보해 줄 차례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가장 상처받았던 말은 "내 월급만큼 벌 수 있냐"는 말이었다.

나도 결혼과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남편의 직장을 따라 멀리 지방까지 내려가지 않고 어떻게든 업을 이어나갔더라면 남편만큼 혹은 남편보다 더 많이 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전남편에게 일은 결혼 전부터 자신의 취향이나 꿈과는 상관없는 그저 적성에 맞는 생계수단이었고,

나에게 일은 결혼 전부터 돈과는 상관없이 그저 좋아하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줘? 이런 느낌으로 대학 졸업 후부터 출판사 일을 하게 되었는데...


무튼 곡절 끝에 취업을 했고 경단녀 딱지를 뗐고, 벌써 올해 6월이면 3년이 된다.


성과 아닌 성과라면 일적으로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어느 정도는 해소했다.

기획을 잘했고, 우리 회사 벨류에 맞거나 혹은 그보다 인지도 높은 저자도 섭외했고, 책은... 잘 만들어낸지는 모르겠으나 성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26년 라인업도 이미 거의 세팅을 다 해놨다.


내 노력과 성과를 회사에서 인정해 주어 작년대비 11% 높게 연봉이 책정되었다. 다른 편집자들의 연봉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복지제도도 좋아졌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내가 좀 늙은 것 같다. 힘에 조금씩 부친다.


8년 동안 묵혀둔 아이디어와 일하고 싶었던 열정을 쏟아내기라도 한듯 너무 쉼 없이 달려온 것 같다.

쌈빡한 기획도 떠오르지 않고, 내 연봉을 높인 만큼 기대하고 있을 회사에서 만족할 만한 저자를 섭외할 자신도 없다.


내일은 내 생일이다. 이제 태어난 지 딱 41년이 되었다.

스무 살까지는 사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치고, 좋게 봐서 대학생 때까지는 어느 정도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꿈꾸는 시기였다 치더라도.


사회에 나온 이후부터 18년 동안을 돌아보면...

수중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돈도 체력도 번뜩였던 아이디어도 다 소진한 느낌이다. 마치 통장잔고처럼.


그치만 예전처럼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내 자신이 한심하지는 않다.

지금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난 성공 못해, 실패했어, 루저야 가 아니라 '곧 성공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은 엇그제 섭외하고 싶은 저자 분이 계셔서 만나 뵙고 왔다. 어린 나이에 수억의 빚을 떠안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특수청소라는 사업을 시작해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내신 분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려운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한때는 자신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분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스러웠다. 말이 특수청소지 쓰레기가 몇 톤씩 가득찬 집, 불탄집, 고독사 현장 등을 청소하시는 콘텐츠를 올리시는데... 진짜 보통 멘털로는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갚아야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큰 빚을 지고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도 생각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사실 난 그만한 빚도 없으니까 더 빨리 시작할 수 있고 성공하기 용이한 출발선에 놓여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나이 대마다 이뤄 내야 할 과업을 지키지 않으면, 실패자라 낙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공자께서 15살엔 지학, 30살엔 이립, 40살엔 불혹, 50살엔 지천명 등의 퀘스트를 주시긴 했지만, 40살에 서울 자가에 자차에 차장 직급을 해내야 된다고 하셨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 나이에 직장 다니며 차장도 달아보고, 베스트셀러도 내보고...


그래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아? 나 좀 능력 쩌는데?

마인드를 장착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곤두박질 칠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 경단녀 티는 떼고, 프로로서 성장하기 위해 잠시 멘털을 가다듬으려고 한다.







금요일 연재
이전 23화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