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된 관계 속, 오늘

결론은, 오늘에게 잘 하자

by 얄리
이거 봐.
또 혼자하려고 하네


이건, 그러니까 고질병이다. 일만 들어오면 나는, 그것들을 보자기에 주섬주섬 담아서 허리에 질끈 동여 맨 채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마치 "일을 다 끝내기 전에는 밥도 없고 잠도 없다"고 협박이라도 당한 것처럼. “알아서 하시겠지요.” 사람들은 닫힌 방문 앞을 서성이다가 그들을 찾는 인기척이 없자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들 모입시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늘 이런 식이었다. 고독한 투우사는 항상 혼자서 소와 맞섰다.


'뭔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핵심을 한번에 읊고 해야 될 것들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일이 시작되면 쫓기는 기분이 들고 속이 쓰렸다. 하지만 그 일은 나에게 주어진 책임 같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일.


일단, 각자 찾아보고 얘기 합시다.
문서 만드느라 시간 쓰지 마요.
같이 얘기해서 정리를 하는 게 먼저니까
그 다음에 문서는 또 금방 하니까


고질병을 고치는 약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시간. 나는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 낸 내 몸에게 졌다. 문서를 해독하는 집중력은 날이 갈수록 얕아지고 있었다. 언제 치고 들어왔는지 모를 잡념들에게 쉽게 머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고려해야 할 포인트를 하나의 편향으로 퉁치거나 임의로 몇 개를 빼 먹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그러니 내게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고독한 투우사가 가족들과 함께 소를 키우는 농부가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가 일을 이해하고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내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의 반절이면, 결과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골똘히 생각해서 얻어낸 결론은 다른 사람도 낼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굳이 정리해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예측이 된다는 것도. 내가 이해를 하고 전달을 하면 듣는 사람은 전달한 내용을 다시 이해를 하고 움직여야 했지만, 같이 동시에 이해를 하면 방향이 같은지만 확인하고 움직이면 되었다. 혼자 짊어매고 내방으로 들어간 만큼 더 정교하게 정리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간만큼 진행이 늦어진 것 뿐이었다.




어! 오늘 우리 워크샵 가는 날인데
어떻해, 같이 갈껴?


때때로 퇴사한 직원이 예고도 없이 깜짝 방문을 할 때가 있다. 하필이면 워크샵을 가기로 한 날, 이왕 온 거 끼고 싶으면 껴도 된다. 말이 워크샵이지 그냥 풍경 좋은 곳에서 맛있는 거 배터지게 먹고 오는 거였다. 우리의 워크샵이란. 일정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가는 길에 들릴 맛집, 저녁에 해 요리해 먹을 해산물 종류, 밤에 출출할 때 먹을 주전부리, 아침에 일어나 먹을 요기거리, 돌아오는 길에 들릴 맛집 등 이었다. 워크샵이 있었던 하루를 담은 사진을 들여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들 천지였다. "꽃게 지겨워요! 다른 거 먹어요"와 같은 건설적인 토론이 오가거나, "어차피 먹고 자면 땡인데 그냥 당일치기로 먹고 오는 건 어때요?"와 같은 합리적인 발상이 나오기도 했다. 다들 의견이 그렇다면 따르는 게 좋은 거다. 난 그래도 꽃게가 좋지만 됐고, 잠은 집에서 자는 게 나도 좋으니 대찬성이다. 낯선 곳에서는 잠도 잘 안 오더라.


저는 이만, 총총
점심셔틀 뛰고 오겠습니다.


사무실에는 점심시간은 제각각이다. 집에서 싸 가지고 온 반찬들을 늘어 놓고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는 A그룹이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펼쳐 놓은 채 유투브 방송을 시청하며 밥을 먹는 B그룹이 있고, 먹는 낙으로 하루를 살기에 맛있는 집 탐방을 떠나는 C그룹이 있다. 나는 대게 C그룹에 속하지만 여름과 겨울 일년에 두 차례는 달라진다. 아이의 방학이 있는 기간에는 점심밥을 차려주기 위해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네가 고생이 많다"라는 안쓰러운 시선은 접어 둬라. '이 참에 나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코스를 밟아볼 참이니까'라면서도, 방학이 끝나고 정상모드로 돌아오면 반드시 먹을 음식 리스트를 작성해 둔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뭣이 중한디!




누가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으래?
-
아! 금방 끝나요. 십분이면 되요.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게 있다. 내일의 일을 오늘로 당겨오는 건 반칙이다. 오늘에게 잘 하지 않으면 내일이 성질낸다. 지난 날 누군가는 내게 말했었다. "네가 늦게까지 일을 붙들고 있는 건, 네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무능해서 그런 거야"라고. 물론 정말 무능하다라는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아니 그랬기를 바란다. "일할 때는 일하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일에서 손을 떼는 습관을 들여야 일에 압도되어 일상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랬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칼같이 퇴근하는 새사람으로 거듭 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늦게까지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도 굳이 습관처럼 앉아 있지 않을 수는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전해야 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게 있다고.


왜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지?
자기 없으면 안 돌아가게 할 셈이야?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함께 하는 일을 리딩하는 입장에서 '차라리 나 혼자 하는 게 편하겠어' 싶을 때가 생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결과물을 반드시 내 눈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강박에 자신에게 할당된 일과 타인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일까지 더해져 일감에 치이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나도 그랬어요. 일을 나누는 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나눠서 짊어지지 않으면 혼자 너무 지쳐요. 당신은 혼자 남겨두고 퇴근한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 거고, 당신을 두고 먼저 퇴근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눈치를 보느라 편치 않을 거예요. 나눠서 생기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래야 나눠져요. 혼자만 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리면 당신 없이 안 돌아가잖아요. 그럼 앞으로도 쉴 틈이 없어 질텐데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말을 하는 나도 아직 일을 함께 나눠서 하는 일에 서툴긴 하다. 이건 계속 반복해서 몸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혼자하다 열폭해서 퇴사하지 말고 가늘고 길게 일하자고요.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가 아니고요.




오늘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잘 하자


사람이 몇 안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다. 한 사람의 우울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고 한 사람의 셀렘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신경을 쓰는 것을 '관리한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불편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없애면 된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합의만 있으면 족하다. 더 편해질 수 있고 필요해서 바꿨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면 다시 되돌리면 된다. 물론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합의만 있으면.


자그마한 회사라 딱히 '직원의 거창한 복지'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카페테리아, 사내동호회 활동 지원, 자기계발기회 제공 같은 것은 그림의 떡이다. 그저 사업체가 준수해야 할 기본을 지킨다. 그 외는 일의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을 빼곤 개인의 자유도를 높이는 것을 선택한다. 룰이 많으면 예외 변수도 많아진다. 지키는 사람과 살살 피해가는 사람 간의 갈등도 빗어진다. ‘이것들을 지키자’가 아니라 ‘이것만 어기지 말자’ 그것만 알고 있으면 족할 룰만 남긴다.


딱히 특별할 일 없는 평범한 하루, 큰 성취감은 없을 수 있다. 며칠 내에 완료해야 할 일을 끝낸 날 가뿐한 마음이 드는 일은 있겠지만. 직급이 세분화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승진이 가지는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조금의 연봉상승과 조금의 책임감상승. 어차피 늘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합은 직급이나 역할 분배를 따질 것도 없이 맞춰져 있다. 함께 기분 좋게 퇴근하기 위해 일은 알아서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내부의 인원이 소화하기에도 일이 넘치면 외부의 도움을 받는다. 그마저도 풀가동이면 다소곳하게 거절한다. 우리는 오늘만 일할 게 아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할 일이 있기에 오늘 안에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떠 앉고 내일을 맞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