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연의 기원

옛동료, 친구, 동반자로 남다.

by 얄리
어! 벌써 다 모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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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좀 오셔,
소고기 죽이는데 알아놨어


일년에 서너 번 느닷없이 카톡이 들썩거리는 때가 꼭 있다. 그분들이 오신 거다. 우리는 가끔 좀 만나 주어야 한다. 주로 홍대를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는 음식점이 타깃이다. "아, 쫌! 고기 좀 건드리지마" 소고기 굽기의 달인을 자처하는 1인에 의해 모두의 젓가락은 풀떼기 주변을 배회한다. "됐어. 먹어 빨랑" 달그락, 달그락, 이제 그만 기다려. 우리는 한때 같은 회사의 식구들이었다. 그때는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십여년이 지난 지금 유효하게 남은 관계는 나이순 밖에 없다. 지난 날을 기준으로 삼으려 해도 지금 나이에 지난 직급은 비주얼 자체가 여럽고, 현재를 기준으로 삼으려 해도 만날 때마다 소속과 직급이 바뀌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 헷갈린다. "몇 년 생이였더라? 줄 서 봐봐" 서열의 재정리, 식상하지만 제일 외우기 쉽다.


이들로부터 나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기억 저편에서 돌아가던 다른 이야기들을 주워 듣게 되곤 한다. "그때 네가 하도 미친듯이 달려서 따라가다 뒤질 뻔 했잖아!" 뵈는 거라곤 일 밖에 없었던 나는 함께 달려야 할 사람들이 옆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살피는 배려가 1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 일이 틀어진 건, 이이랑 저이가 앙숙이라 그런거지. 몰랐어?" 몰랐다. 바빠 죽겠는데 왜 두 사람 모두 팔짱만 끼고 앉아서 R&R 얘기만 주구장창 꺼내며 나를 환장하게 만들었는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일은 일인 줄 알았지, 일을 하는 사람 간의 관계도 일의 범주에 드는 줄은 몰랐던 거다. "그러니까 십년을 죽치고 있었지. 네가" 그랬다. 나는 눈가리개를 장착한 경주마였다. 내겐 완주해야 할 결승선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만 갈구고 다같이 완샷.


꼭 내가 모아야겠어? 담엔 니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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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패션은 뭐야? 연예인이야?


연말이면 일년치 생존신고를 하는 이들이 있다. OB라고 부르려니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섞여 있고, 동종업계 모임이라고 부르려니 고객사와 외주사가 섞여 있다. 모임의 주관자는 내게는 전고용주 되시겠고, 다음 모임을 주관하라고 강요받고 있는 전전사수는 이제 고객 되시겠다. "아니 살이 왜 이렇게 쪘어?" 내지는 "합성 비타민 먹지마. 내가 먹는 게 있는데, 이거 좋아" 내지는 "아는 밴드가 이번에 공연하는데, 올래?" 같은 내용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분명 처음 모였을 때에는 다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1차, 2차, 3차 즈음에는 모르는 사람과 건배를 하고 있게 되는 묘한 모임. 일이라는 것을 통해 만났지만 이제 일만 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 얘기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일 말고도 관심이 다양해 진 까닭이다. 세상엔 취미도 많고 영양제 종류도 참 많더라. 그때 우리가 일 얘기를 5분의 1만 줄였으면 어땠을까? 각자의 허당끼에 한번 더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나부터가 일 얘기만 했더랬지.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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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8년 쯤? 늙었네 우리도


복층의 구조로 된 디자인 실, 2층에서 할당된 페이지를 열심히 채우고 있던 내 귀에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에 새로 입사한 기획자가 낀 모양이었다. 그렇게 디자이너와 기획자로 만난 연으로, 그 후 회사명은 다르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였던 3개의 회사에서 약 5년을 함께 일했다. 그러다 분야가 전혀 다른 쪽으로 그녀가 이직을 했고, 이제는 한 사람은 워킹맘으로 다른 한 사람은 전업주부로 생활의 리듬도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달에 한번 꼴로는 얼굴을 본다. 서로 얼굴을 봐야만 살아갈 수 있는 관계, 서로에게 둘도 없을 만한 절친으로. 함께 일을 할 때는 거의 세트로 움직일 정도로 붙어 있었다. 내가 야근이 많다는 건 그녀도 야근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둘 다 일의 무게를 잔뜩 짊어졌을 때, 유일하게 서로의 마음을 공유했던 우리는 함께 하던 일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서로의 일상과 내면을 들여다 본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또 각자가 삶에서 지향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만날 때면 바로 직전에 봤을 때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제 늦게까지 함께 일하다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만난 사람처럼. 여전히 둘은 세트다.


지금와서 전략을 바꾸면 어쩌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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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 같던 날 다 지나고 왜 그런데?


20년 째 곁을 지키고 있는 동반자는 이 분야로 처음 진입했던 회사의 입사동기였다. 온라인 에이전시와 SI라는 기업의 구조적 특성이 조금 다른 쪽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은 여러 모로 프로세스와 배정인원의 역할이 유사한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의 직업이 완전히 달랐다면 업무의 방식에 대한 이견 때문에 많이 충돌했을 것이다. 한 쪽이 출퇴근 시간이 명료한 회사에서 일을 해 왔다면 빈번한 야근과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관행들을 무던하게 바라봐 주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두 사람 간에는 몇 가지만 확인이 되면 족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진행하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함께 일할 TF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서로의 일정을 감안해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 맡았다. 동시에 바빠질 수 있을 경우에는 각자의 피크시점을 좀 당기거나 늦추어 조절했다.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전후 사정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회사의 동료에게 말하듯 앞뒤 생략하고 툭하고 던져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서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이미 함께 그런 상황들을 넘겨 봤을 때 파악을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시간이 서로의 업무태도를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지 늘 체감할 수 밖에 없다. 유사하지만 또 다른 패턴, 매일을 함께하며 같이 나이 들어가는 동반자.





일은 가고 사람은 남는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된 이후, 내 삶을 둘러 싸고 있는 주변인들 중 거의 대부분은 일로 인해 연결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일이란 것은 어쩌면 내 삶에 있어서 '일종의 페이크'였는지도 모른다. 사회에 처음 진입한 신입에서 실무 경력자로 또 관리자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단계 별로 필요한 자질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으로 마치 파동이 발생하는 듯한 흐름속을 정신없이 달렸다. 이 모든 것을 '일이라는 걸 배워가는 과정'으로만 알았지만 그 흐름은 '사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삶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파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것 말이다. 결국 그 파동의 끝에는 일이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남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함께 했고, 그 당시 상황이 어땠으며, 그때 서로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그 기억들은 가물가물해졌다. 어떤 이는 '다시는 안 봤으면' 싶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때 참 잘 맞았는데'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무리로 나누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때를 굳이 되돌아보며 따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것은 '한때 정말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시절의 나와 너를 아는 우리'였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우리 밖에 없다. 서로의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은 그냥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옛동료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곁을 지키게 되나 보다. "일만 열심히 했었다"는 건 거짓말이거나 착각이다. 골방에서 혼자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일로 포장된 관계'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