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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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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a Jan 25. 2021

누구도 K-장녀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나는 1남2녀 중 첫째이다. K-장녀 중에서도 난이도 '상'이라고 꼽는 경상도 K-장녀다.

첫 아이, 첫 손녀, 첫 조카여서 기억이 나지 않던 아기시절엔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더랬다.

하지만 기억도 안나는 아기시절은 찰나였고 야무진 둘째 동생과 장손인 막내동생이 생기면서 점차 나는 K-장녀로서 역할기대를 버텨내야 했다.

고작 두살 차이나는 여동생보다, 다섯살 차이나는 남동생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아이이면서도 어른이길 강요받았고 동생보다 무엇이든 뛰어나야한다는 부담감도 느껴야 했다.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나에게

"너는 언니니까/누나니까 동생한테 양보해.", "언니가 되서/ 누나가 되서 부끄럽지도 않냐", "동생도 ~는 하는데 너는 맏이가 되서 왜 그러냐", "맏이가 되서~"

라고 말하며 K-장녀가 가져야할 덕목에 대해 끊임없이 주입하셨다.

나는 매번 항변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맏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의 '맏이'에 대한 잣대는 항상 엄격했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동생한테 양보해야 하고 언니(누나)로서 동생들에게 모범이 될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으며, 울고 싶어도 울지 말고 감정표현을 절제하길 바랐다.

내가 아이가 아니었던 순간은 한 순간도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내가 '맏이'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자주 열등감에 휩싸였다. 부모님이 원하는 맏이로서의 롤(Role)을 못 해내는 내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곤 했다.

동생들의 부족한 부분은 '동생이니까' 당연한 것이었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동생도 ~하는데 넌 못하니'가 돼버렸다. 형제가 있어서 든든할 때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형제애보다는 열등감과 경쟁심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끊임없이 동생과 비교당하다보니 아무 잘못도 없는 동생이 밉기도 했다. 

나를 '나'로서 봐주지 않고 '맏이'의 잣대로 바라보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맏이'로서의 양보와 책임을 강요받는 유년시절 때문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내가 언니로서, 누나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서 동생들을 잘 이끌어 줘야하고 챙겨줘야 하고 어른스러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럴 자신이 없어 그런 관계 자체를 피하려고 했다. 나는 이미 크면서 세뇌당한 K-장녀의 본분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대입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K-장녀의 역할은 유년시절로만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 중이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돌아 가신 후로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가장이 되었다.

혼자 힘으로 세 명의 자식을 키운 엄마도 나이가 드니 자꾸 기댈 곳을 필요로 하신다.

이번엔 K-맏사위에 대한 역할기대가 상당하다.

내가 결혼할 상대가 집안의 남자어른으로서, 엄마가 필요로 할때 달려와서 해결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고, 엄마 눈에는 마냥 어리고 아기같아 보이는 동생들까지도 케어해주며 집안을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왜 나의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엄마는 이런 잣대까지 들이 미는지 너무 숨이 막혔다.   

내가 결혼할 상대에게 여러 기대를 품고 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번 생엔 결혼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내내  장녀가 아닌 나로서 살고 싶었다.

서툴러도 되고, 어른스럽지 않아도 되고 책임감에 억눌리지 않고 '나다움' 그자체로 존중받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맏이로 태어날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든 K-장녀에게 '맏이스러움'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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