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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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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a Aug 05. 2022

엄마, 우리 이제 멀어지자.

기댈 곳 없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때때로 견딜 수 없이 외로울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빈 콜라병이 돼서 끝도 없는 심해로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라고.

속이 텅텅 비어버린 콜라병에 채워도 채워도 갈증 날 바닷물을 한가득 넣고 끝없이 가라앉는 것이  내 모습 같다고.

내 외로움의 공백은 어디서 생긴 걸까 생각해보니 엄마와의 관계가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요즘은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올해 초, 나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내 건강염려증 덕분에 초기에 발견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멀쩡한데 '암'이라는 단어가 나와 관련 있는 단어가 돼버린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고 힘들었다.

일의 특성상 수술을 받으려면 휴직을 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마음도 추스르지 못한 채 회사에 알려야 했다.

 직장 상사들에게

"제가 갑상선암에 걸렸습니다."

라고 말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확인사살을 하는 것 같아 내가 뱉은 말임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회사 동료, 지인들의 위로에도 상처받기 십상...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회사 동료, 먼 친척 등 지인의 사례를 얘기하며 건네는 위로를 들으며

'아... 남의 불행은 이렇게 소비하기 쉬운 것이구나. 나도 또 저 사람들의 지인들에게 소비될 불행을 알려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고 직접적으로 "암이야?"라고 묻는 일부 지인들에게 가볍게 뱉는 그 말이 듣는 나에겐 얼마나 무겁고 잔인한 말인지 아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본인 일이어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묻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자세히 묻지 않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힘든 시기였고 가족과 남자 친구만이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진...


엄마와는 오랜 시간 쌓여온 감정의 골이 있었다.

나름 장녀 노릇을 하고 싶었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엄마에게 선물도 하고 여행도 같이 가며 노력했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면 됐는데 오히려 "내가 너를 키워준 거 생각하면 이런 걸로 생색내지 말라, 더 달라"라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엄마에게 때때로 상처받았다. 꼭 그 문제가 아니어도 엄마와 매일 첨예하게 부딪칠 문제는 차고 넘쳤다.

그날은 내 상식으론 이해 안 되고 위험한 엄마의 생활습관 때문에 엄마와 크게 다퉜고 엄마는 악에 차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화를 냈다.

네가 그렇게 못됐으니까 암에 걸린 거라고.

홧김에 한 얘기라고 해도 철천지원수도 나한테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또 내 마음은 빈 콜라병이 돼서 심해로 한없이 가라앉았다.


엄마와 멀어지고 싶었다. 당분간 연락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하고 거리를 뒀다.

엄마가 서툴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에도 이번엔 못 이기는 척 넘어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남자 친구에게 불똥이 튀어서 더 이상 엄마를 피할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웠던 엄마에 대한 나의 상처들을 백 번 고민하다가 남자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힘겹게 꺼낸 내 얘기에 곧잘 공감해주는 것 같았던 그는 결국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와 엄마의 갈등 속에서 장모님과 잘 지내는 싹싹한 사위가 될 기회를 잃은 것에 속상해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서 가족이 남보다 더 힘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어른에게 그래도 네가 져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나는 또 빈 콜라병이 돼서 깊은 바닷속으로 꼬르륵 가라앉았다.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걱정하고 가까워지면 벗어나고 싶은 이 괴로운 마음과 죄책감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해방될 수 있을까.

나는 손발이 묶인 것 같다.

힘든 마음을 어렵게 털어놨지만 내가 틀렸다고 한다.  모녀 사이는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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