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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a Sep 27. 2024

애증으로 범벅된 모녀 사이

엄마가 짠하면서도 밉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가정주부에서 갑자기 가장이 된 엄마는 세 명의 자식들을 위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의 희생 없이 우리가 자라지 못했겠지만 우리 삼 남매 모두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제 앞가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의 세월을 보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엄마의 고생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나도 직장에 정착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 투잡, 쓰리잡도 하고 총 열일곱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20대의 나는 행복했지만 고통스러웠다. 치열하게, 열심히 지냈지만 마음이 쉴 곳이 없었다. 

집이 단 한 번도 휴식의 공간인 적이 없었다. 엄마와 많이 싸웠고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엄마는 내 행동이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꼭 나 자체를 비난했다.

"너는 예민하고 성격이 못됐어."라고. 

성인이 된 이후로 봉사활동도 하고 여행도 떠나보고 장학금을 받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며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존감을 높였다가도 엄마의 날 선 비난과 폭언을 들으면 그런 노력들이 모래성이 돼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내가 위장염에 시달릴 때도 "또 아프다고? 그건 다 니가 성격이 예민하기 때문이야"라며 걱정을 빙자한 비난을 하는 엄마 때문에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아픈 걸 내색하지 않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힘든 일을 겪어도 그건 나의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 답정너처럼 말하는 엄마와 자꾸 부딪쳤고 어느샌가 엄마는 자기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나에게 쏟아댔다. 

화가 나면 욕설과 폭언을 퍼붓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너희를 키웠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니가 아냐"면서 악에 받친 듯이 소리 지르고 윽박지를 때면 나는 엄마의 고생을 좀먹고 살아온 것만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고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이제 우리 삼 남매 모두 취직도 하고 자기 앞가림은 다 하는데, 지나간 고생의 세월에 엄마만 발이 묶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고생을 좀 먹고 자란 것일까. 

나라고 우리 엄마가 고생한 세월이 마음 아프지 않은 건 아닌데.

너무 노골적으로 본인의 세월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마다, 자기 연민에 빠져 그런 감정을 나에게 강요할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엄마가 좋아할 모습을 떠올리며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고, 문득문득 엄마가 생각나서 선물을 사고,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도록 선물도 보내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해왔는데 엄마가 보상받고 싶은 세월에 비하면 나의 노력들은 항상 부족했다. '더'를 원했고, 내가 서운함을 표하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너는 고작 이런 걸로 생색을 내냐"며.

이렇게 엄마와 부딪치는 시간들을 나중에 후회하는 순간이 올까 봐 나는 항상 죄책감에 사로 잡혔고 엄마의 폭언에 상처받은 마음은 꾹꾹 눌러 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엄마를 대했다.

엄마가 짠하면서도 밉다. 전생에 원수 사이가 모녀로 환생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니가 성격이 그래서 아픈 거야"라고 남도 못할 폭언을 뱉는 엄마를 보며, 본인의 상처만 나에게 사과하라고 퍼부어 대는 엄마를 보며, 제발 당분간 거리를 두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이제 일말의 죄책감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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