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에 대하여_어느 돈까스 집에서
열흘 간 제주에서 삽니다 5
이전 글에서 '필요한 만큼의 친절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는 글 그렇게 친절해야만 할까? 왜 그렇게 친절에 집착하는 걸까. 오늘은 원래 어승생악에 올라가 보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야외 활동은 내일로 미루고 (오후 1시 50분인 지금 비는 그쳤다. 안되는데... 계속 와야 하는데...) 비를 핑계 삼아 돈가스 맛집으로 향했다. 원래 웨이팅이 있는 곳이지만 평일이기도 하고 비도 오기도 하니까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을 거 같았다. 11시에 문을 여는 곳이라 그 앞에 주차를 하고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이 음식점에 대한 네이버 리뷰를 보다 보니 남자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내는 음식값에 '친절값'이 포함된 것일까?(만약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여기는 음식점인데 맛만 있으면 그 친절함은 다 한 게 아닐까 하는. 종업원이 웃으면서 상냥하게 하지는 않았어도, 최소한 음식을 내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면 적어도 자기가 서빙하고 계산하고 치우는 일은 다 했을 텐데 왜 하루 다녀가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 여기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유명하고 북적대는 곳의 리뷰를 보면 그런 말이 한 번씩은 있다.(아니 한 번 있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우리나라가 과도한 친절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바다 건너 섬나라 쿠바에 갔을 때였다. 이렇게 친절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쿠바에 가면 기염을 토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쿠바의 로컬 음식점에서는 친절함을 바랄 수 없다. 그저 그들은 그들의 role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관광객이 많은 가는 곳에서는 다소 관광지에 적합한 예의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뒷골목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로컬 음식점에서는 오히려 관광객이 들어가면 경계의 눈빛만을 보낼 뿐이다. 무심하고 무신경하게,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고 음식을 준다. 심플하게.
사실 나는 가기 전에 쿠바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 는 글을 보고 갔기 때문에 이런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막상 그게 사실이라는 걸 직접 목격했을 때, 그들이 불친절한 게 아니라 우리가 과하게 친절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음식을 안 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경계심과 진심에서 나오는 수줍을 미소를 만났을 때 '진짜' 친절함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과잉 친절이지만, 사실 영혼 없는 기계적 친절함을 요구하는 것 같다. 매우 친절하지만, 사실 '무친절'이다. 음식을 사 먹는 사람은 돈을 지불하면 되고, 음식을 파는 사람은 가격에 맞는 음식을 내어주면 된다. 내가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없는 주제에 사 먹으면서 음식에 +친절까지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 같다. 그 사이에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감사해야 할 일인 거지, 그게 리뷰에 달만큼 불평불만을 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불친절하지 않다. 주문을 받으면서 음식을 내어주면서, 인사를 하면서, 눈빛을 마주하고 가식 없는 미소를 보내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친절함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다. 오늘 간 돈가스 집도 그 시간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혼자 온 내가 안타까웠(?)는지 비빔국수도 서비스로 주셨다. 돈가스 자체가 1.5인분에다가 비빔국수까지 주셔서 다 먹으려고 애썼지만 다 먹지 못했다. 서비스까지 주셨는데 다 못 먹은 게 죄송해서 계산할 때 그 '불친절하다는' 남자 종업원에게 "다 못 먹어서 죄송해요. 너무 배불러서..."라고 했다. (여자 혼자 다 먹으면 대식가이긴 할 거다.) 그러니 남자 종업원이 수줍게 웃으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희야 맛있게 먹어주시기만 하면 돼요."라고 했다. 예의 친절한 모습으로. 사실 비빔국수를 서비스로 주신 사장님의 모습이야 말로 진짜 친절이 아닌가. 무뚝뚝한 모습 뒤에 홀에 있는 손님 한 명 한 명을 가능하면 챙겨주시려는. (어제 카페도 그렇고, 제주도 분들 왤케 사람 자꾸 챙겨주시나요, 감동이다 정말)
사람이 많아서 바쁘고 정신없을 때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부모님도 고향에서 식당을 하시는데 손님이 많으면 아빠가 기분이 한껏 나빠진다고 한다. 백종원도 골목식당 나와서 그랬다, 식당 주인이 손님 많은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바쁘고 사람 많은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친절함과 상냥함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잘못된 설정이다. 가능하다면, 사람이 적은 시간에 방문에서 식당 종업원도, 손님도 모두 여유가 있을 때면 몰라도. 친절함을 받고 싶다면, 그전에 나부터 친절한 말 한마디 "너무 맛있었다."는 말이라도 건네보시길. 그럼 무뚝뚝한 얼굴 뒤에 수줍고 감사한 미소를 덤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못 보면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친절을 원한다면 돈이라도 좀 더 주고 친절하라고 하던지,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