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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i Dec 31. 2021

마지막 날에는 무엇을 하시나요(2)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졸업시즌이다.

졸업시즌에는 꽃 시장에 꽃이 없고, 꽃 가격이 오른다.

졸업식 물품이 계속해서 배송되어 온다.

졸업 영상을 만들고, 졸업장과 상장을 주문한다.

졸업식 시나리오를 짜고, 행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담임교사인 나는 종종 슬프다.


뭐가 그리 슬픈 것인지는 모르겠다.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살았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건, 아쉬움이 가득한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졸업을 시키는 일은 유달리 슬프다. 근 한 달 간은 차를 운전하면서, 연구실에서 복사를 하면서, 교실에서 애들끼리 투닥거리는 걸 보면서,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모든 순간순간마다 졸업식 풍경이 그려지며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지만 교사들에게 진짜 마지막 날은 졸업식 혹은 종업식 날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오늘은 큰 의미는 없다. 지금도 (앞글에서 말했듯) 조퇴하고 학교를 벗어났지만,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앉아 학급 문집을 편집하고 있다. (노마드 시대의 단점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말 동안 졸업식 물품도 사고, 졸업식 때 쓸 영상과 슬라이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은 아마도 1월 5일, 다음 주 수요일이 될 것이다.


 바쁜 와중에 나는  학급문집을 만든다. 다행히 하루   파일을 보내줘도 주말에 인쇄해주는, 매번 10-20만원 밖에  되는 소박한 금액의 권수를 주문해도 기꺼이 양해해주시는, 의리 있는 인쇄소 사장님이 근처에 있어서 이렇게 급하게 파일을 편집해서 넘겨드려도 졸업식 전까지 가져다주신다. 학급문집이라고 하면 남들은  엄청 거창하고 대단한  아는데 그냥 아이들이   그대로 복붙하기 때문에 실제로 품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비효율적인   질색이다.) 사실 이걸 받은 친구들이 문집을 읽을지  읽을지  모르겠다. 그냥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열어 보았을 ,  내가 그때 그랬네,  친구들이 이랬구나, 우리 선생님 마음이 그랬구나,하면서 잠시나마 어린 시절을 기억할  있는 일종의 억물건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아주 소박한 바람만 가지고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은 편집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쓰는 내 글이다. 보통 아이들 글 가장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붙여 우리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어떨 때는 글일 술술술 나오고, 어떨 때는 조금 형식적으로 쓰기도 한다. 경험 상,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 글이 잘 쓰였던 것 같다. 아마도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 마음이 반영된 것이겠지. 그런데 올해는 왠지 부모님들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부모님 한 분 한 분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공통적인 내용을 우선 쓰고, 미처 말하지 못했던 아이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적어서 드리고 싶었는데, 그 간절함보다 나태함이 이겨버려서 올해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부모님께 쓰는 편지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다시 도전(?) 해 봐야지.


부모님께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얼굴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년에도 6학년을 했지만 그 친구들은 2학년 때 담임을 했던 친구들이라 부모님 얼굴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코로나로 학교 상황은 힘들었어도 부모님들 대하기는 좀 더 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개교학교인 데다가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으니, 전혀 얼굴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게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다. 1년에 한두 번 마주하는 사이라도,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일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이 아쉽고 슬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싶어, 문집을 편집하다 말고 부모님들께 편지를 먼저 썼다.



미처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은, 행간에서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2021년의 마지막 날, 마지막 편지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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