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기록

'최근 삭제된 항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by 보라진

사진첩을 누른다. 핸드폰을 바꾼 지 이제 3개월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2700여 장의 사진이 있다. 그 밑에는 내가 최근 지운 사진들이 모여져 있는 사진첩이 또 하나 있다. 거기에는 약 700여 장의 사진이 있다. 어느 날 핸드폰을 업데이트하니, 사진을 삭제해도 또 한 번의 삭제할 기회를 주는 '최근 삭제된 항목'이라는 폴더가 만들어졌다. 처음엔 실수로 삭제한 사진을 다시 되돌릴 수 있어 마음이 놓여, 나는 빠르게 사진을 삭제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삭제된 항목'에 폴더에 포함된 사진들은 유효기간 30일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지워진다. 그러니 나는 사진을 삭제하고 30일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냥 놔두면 없어질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최근 삭제된 항목'을 눌러본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삭제한 기록을, 나의 기록에서 선택되지 않은 순간들의 기록을, 기록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되었다.


문득, 나는 왜 이사진들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 날의 그 순간 나는 무엇을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의 사진첩을 채우고 있는 2700여 장의 사진들이 어쩌면 나의 순간을 내가 원하는 기억으로 편집해주는 기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록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내가 그 순간을 얼마나 부풀리고자 했는지, 축소하고자 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가 하는 기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여러 순간의 연속 안에서 나는 어떠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 순간을 그 순간 자체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그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에너지로 그 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웃고 있는 모습, 커피 한잔이라도 분위기 있어 보이게 찍어두는 것, 산을 오르며 힘들었지만 마지막에는 행복한 모습만으로 채워져 있는 사진을 남겨두며 나는 나름 그 순간을 잘 기록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붙잡고 싶어,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기록했다. 그 기억을 잃어버릴까 기록하고, 기록을 보며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또 기록하고, 삭제한다.


좋았던 순간, 행복한 모습으로 남겨진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나의 지금 순간은 어떨까. 어쩌면 '최근 삭제된 항목'에 있는 곧 한 장, 한 장씩 없어질 사진들이 나의 삶과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질 것이고, 또 다른 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또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또 고민하고, 기록하고,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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