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나는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왜’라는 말을 좋아했다.
사소한 일에도 늘 이유를 궁금해했다.
“왜 이건 이렇게 하는 걸까?”
“이 방법 말고는 정말 없는 걸까?”
“왜 우리는 이걸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어릴 땐 늘 궁금한 게 많았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우리 집엔 그런 것들을 마음껏 시도할 여유가 없었다.
친구들이 단과 학원에 다닐 때, 나는 방과 후 수업을 전전했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자기가 배운 걸 나눠주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그 틈 사이에서 배우고 자랐다.
어릴 땐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고, 수학도 좋아했다.
사실 수학 영재반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정말 원했던 건,
‘계속 배우는 삶’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 곳의 시 산하 기관에서 일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매번 정말 진심을 다했다.
"얌니는 열정이 있어.”
어딜 가든 들었던 말이다.
나는 소속된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에 늘 관심이 많았다.
그냥 주어진 일만 하기보단,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회의 때마다 질문도 많이 했고,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대해 피드백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튀어 보였고,
어떤 때는 돌연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기관에선
초기 창업기업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맡았다.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고, 성장을 돕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지금, 겉에서만 맴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는 기업 대표들은
자기만의 아이디어와 방향으로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었다.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이었다.
목소리엔 확신이 있었고,
내가 모르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괴리감을 느꼈다.
나는 행정 문서를 정리하고, 지원금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같은 프로젝트 안에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레이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걸까?”
행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전문성은 점점 흔들렸다.
‘나는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계속 배우고 싶은데’
그럼에도 그다음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자라며 접하는 세상이 너무 좁다는 걸,
나는 참 늦게 알았다.
부모가 알고 있는 직업이 곧 내 직업이 되었고,
어른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장이
내 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구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 싶지 않았다.
갈증이 났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봤다.
그러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UI/UX 디자이너’라는 용어부터가 낯설었다.
하지만 조금씩 들여다보니,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내가 늘 좋아했던 방식이었다.
질문하고, 개선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일.
그게 디자이너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설렜다.
그래, 나는 지금 설렌다.
이제야 나한테 맞는 일을 찾은 기분이다.
27살의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갈망했던 ‘배우는 삶’을
이제야 제대로 만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누군가의 칭찬이 아니라,
내 안의 갈증을 채워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공공기관이라는 안전한 꿈을 조용히 떠나보낸다.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길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