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10
올 겨울에는 작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완독 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념비적인 일인데, 자의로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책이기 때문이다. (평소 에세이나 자기 계발류의 책을 선호한다)
1900년대 초반에 쓰인 책이라 현대와는 문화/상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읽으며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는 조금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짧지만 강렬하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한 것 같아 작품 해설을 뒤졌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영혼)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현실)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라고 한다. 쉽게 풀이하자면,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파리로 간 스트릭랜드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작가의 서술로 구성된 책이다.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 작품 해설 중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롤모델은 폴 고갱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지만 작가가 폴 고갱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가가 타히티 까지 가서 폴 고갱에 대해 조사했다고 한다. 작품에서 스트릭랜드가 그린 그림에 대해 묘사를 할 때는 마치 폴 고갱의 작품 같다.
폴 고갱
- 직업 : 증권 중개인, 화가
- 일대기
1) 20대 초반부터 파리에서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30대 초반부터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다. 1882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30대 중반에 증권 일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로 전향했으며, 수입 악화와 갈등 속에서 결국 가족과 떨어져 혼자 파리로 돌아왔다.
2) 1887년, 39세 때 파나마 운하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한 뒤 카리브·마르티니크 등을 전전했다.
3) 1890년 전후부터 유럽 문명을 떠나 보다 ‘원시적’이라고 여긴 곳으로 가고자 마음먹었고, 1891년 43세에 타히티로 건너가 그림을 그렸다. 이때 13세 타히티 소녀 테하아마나와 사실혼 관계를 맺었고, 1893년 프랑스로 돌아왔다가 1895년 다시 타히티로 이주했다.
4) 두 번째 타히티 체류기인 40대 후반에는 또 다른 타히티 여성 파우우라와 동거하며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이 무렵부터 심장 질환과 매독 등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5) 1901년에는 타히티를 떠나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 오아 섬으로 옮겨 살다가, 1903년 5월 8일 54세 나이로 심장마비와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
출처 : 위키 백과
폴 고갱이 사후 예술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여성편력과 가정에 대한 무책임은 비판받을만한 지점이다. 특히 타히티에서 그의 행적은 식민지 권력 아래 성적 착취를 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인 '순수한 타히티 여인들' 역시 그가 이상화한 여성상인 순종적, 신비로운 원시 여성의 판타지에 가깝다. 작품에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그려지며, 스트릭랜드와 관계를 맺은 연인들은 모두 남성 천재 화가를 돋보이기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의 내면 탐구에 대해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블랑쉬의 죽음은 천재 화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희생당하는 장치로만 그려진다.
스트릭랜드가 성격이 고약하고 재수 없게 그려지지만 진정으로 바라는 단 하나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올인했다는 점은 대단하다. 한 때는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고 사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늘 바뀌지만 일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니 한 번쯤은 초기 스타트업에도 조인해서 제품을 키워가는 것도 경험하고 일과 물아일체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열망했었다.
살다 보니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뒤로한 채 그 선택을 하기에는 용기 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며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는 하나만을 보고 올인하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림만을 쫓는 스트릭랜드를 보며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졌다. '예술가'라는 화려해 보이는 단어 이면에는 궁핍과 처절함이 함께 담겨 있다.
작품의 리뷰에 스트릭랜드 보다는 그 주변의 소시민들에게 더 공감이 갔다는 리뷰가 많다.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인상이 찌푸려지면서도 나 역시 그 상황에서는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은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달을 향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대단하고 또 버겁게 느껴졌다. 어떤 삶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 각자의 삶이 존재하고 개인마다 삶의 형태는 다르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선택한 일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니까.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달과 6펜스> 1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