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12
2026년 첫 책은 유발 하라리 작가의 <사피엔스>이다. 저명한 인플루언서들의 추천으로 책 제목은 굉장히 친숙하다. 벽돌 책으로 유명할 만큼 장수가 많아서 읽을 엄두를 못 내다가, 이번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되면서 완독을 했다. 퇴근 후 책을 읽기 위해 꽤나 노력했는데, 이와 별개로 가독성이 좋아서 책이 술술 읽혔다. 물론 작가는 좋은 스토리텔러지만 알고 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주려다 보니, 예시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 어쩌면 예시가 너무 많아서 책이 길어진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피엔스>라는 책 이름을 들었을 때는 구석기에서 신석기까지의 굉장히 협소한 시대상을 다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철저히 빗겨나갔다.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시대가 워낙 광범위해서 지루할 틈이 없어 더 재밌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작가는 책 제목을 <사피엔스>로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작가는 책에서 인간을 그리 현명하거나 대단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책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나온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북클럽 멤버들끼리도 이 질문을 가지고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가장 공감을 받았던 의견은 "동물이었고 여전히 동물이 맞는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를 인간이라는 말로 동물과 구분하며 편협하고 무책임하다는 말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한 게 아닐까?"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시선을 근접하게 볼 수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사피엔스로 지은 이유는 비꼬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에서 <사피엔스>의 해석을 다루는 영상을 2편 정도 봤는데, 그중에서 유현준 교수님이 다룬 영상을 인상 깊게 봤다. 이유는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유발 하라리만의 관점을 설명해 준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이 부분을 열심히 찾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의 잘못을 현재 혹은 미래에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혹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 물론 이 의견도 충분히 옳다고 생각한다 )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7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9까지 회사에 가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6시에 퇴근하고 버스 혹은 지하철이 몇 분 뒤에 오는지 본다. 하지만 이는 근대에 와서 생긴 개념으로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표준화된 시간은 없었으며 시간이 틀리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중요해진 건 산업혁명과 함께 서로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을 태우는 열차 시간표를 만들기 위해서가 시초이다. 이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니치 표준 시간대를 영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세계 표준 시간대가 생긴 것이다.
만약 1만 년 뒤에 미래는 시간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면, 시간에 맞춰서 살았던 현재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한 것이 사실은 과거에 혹은 미래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 얻은 한 가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의 생각을 더 넓게 그리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각을 주었다는 점을 들 것이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작가만의 관점이 명확해서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역사와는 또 다른 역사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근대 이후부터 서구 열강의 성공만을 서술한 것 같아 ( 아시아, 남미는 후추 정도의 곁들임으로 넣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이 점이 아쉽기도 했다. 또한 지금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었는 때는 현대인의 "보통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만의 냉철한 시선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이 책에서 의미있는 바이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서이기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다면 <사피엔스>를 읽는 것을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