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13
<도덕경>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 역사책을 통해서였다. 유가, 법가와 함께 도가를 배우며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은 고사하고 찾을 생각조차 없던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 교양수업에서 <도덕경>을 만났다. 이마저도 수업을 함께 들은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기억 속에서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내 마음은 어지러워도 <도덕경>에 손을 뻗을 생각은 없었다. 직장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침 외부 워크숍에서 <도덕경> 필사를 한다길래 재미있어 보여서 신청했다. 사실 재미있어 보였다기보다는 머릿속을 헤집는 불안한 생각을 잠재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내 완독 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용이 어려워서였는데, 책이 두껍지 않은 것과 별개로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독서 모임 주제가 '평소에 읽지 않았을 책을 읽어보기'인 덕분에 <도덕경>을 완독 하게 되었다. 책 제목이 <길을 찾는 책, 도덕경>인 것과 별개로, 완독을 했다고 해서 내 길을 찾지는 못했다. (작가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다만 심리적 거리감이 큰 책을 완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취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도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냐고 한다면, 나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모두 비우라는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이 비우는 것에 대해 전달하고 있고 때로는 장자의 일화를 통해 쉽게 전달한다.
노자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즉 영리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보다 바보가 더 현명하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애쓰기보다는 그저 진실한 삶을 사는 편이 낫다. 우위를 차지하고자 분투하고 언쟁하고 경쟁하는 일은 결국 역효과를 낸다. 당신을 의심하는 자들을 침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그들의 판에 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은 이해하기 어렵거나 낯선 부분이 있다. 작가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자는 똑바르고 단순화된 언어로, 즉 독자에게 아무런 도전도 제기하지 않는 문장과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은유로 도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독자가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야말로 가장 인위적이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관습과 클리셰와 시류에 가장 밀착해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충격을 줘서 지속적으로 숙고하게 만들고, 도의 영원한 본성을 청자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인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노자는 의도적으로 비관습적이고 색다르면서도 매끄럽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독자가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야말로 사회의 관습과 클리셰에 가장 밀착해 있는 문장이기에 역설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노자답다. (노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노자답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구성된 1부 도의 책을 읽다가 포기하기를 몇 번째, 진실로 감동을 받은 문장을 만났다. 이 구절을 통해 조금씩 도덕경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삶에 있어서 선이란 땅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른다.
”마음에 있어서 선이란 메아리치는 골짜기가 되는 것이다."
깊은 못의 물은 고요하다.
”사회에 있어서 선이란 친절해지는 것이다.”
물은 모두에게 베풀고 모두를 기르되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발언에 있어서 선이란 자기 말에 진실해지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동안 물길은 천 번을 굽이치겠지만, 우리는 물이 언제나 바다로 흘러갈 거라고 믿을 수 있다.
”다스림에 있어서 선이란 질서정연해 지는 것이다.”
가장 부드러운 힘은 끊임없는 반복으로 가장 거센 장애를 이겨 낸다.
”일함에 있어서 선이란 유능해지는 것이다.”
물은 그릇이 네모지든 둥글든 그것의 형태를 따른다.
”행위에 있어서 선이란 시의적절해지는 것이다.”
봄에는 물이 실어 나르고, 겨울에는 얼음이 떠받쳐준다.
상대적으로 1부보다는 2부 덕의 책을 이해하기 쉬웠는데 그만큼 작가의 해설도 점차 줄어들었다. 혹은 처음에 낯설었던 문장이 뒤로 갈수록 이해가 되었던 걸까?
2부에서도 여러 문장을 하이라이트하며 읽었는데, 그중 아래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어왔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건강한 것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면 병든 것이다.
도를 깨달은 자는 결점이 없는데, 자신의 결점을 결점으로 알기 때문이다.
알아차린 얼룩은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다.
알아차린 얼룩은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다니 완벽주의자에게 이토록 위안을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좋게 말하면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잘 챙겨주고 스케줄에 맞춰서 마감 기한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기에) 한편으로는 계획했던 일이 조금만 어긋나도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은 스스로의 결점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말이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할 것 같고 모르면 아는 척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눈치가 보이는 데, '도를 깨달은 자는 결점이 없는데 자신의 결점을 결점으로 알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척을 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결점이 결점이 아니기 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있단 말인가.
도덕경은 너무나 유명한 책이고 다양한 언어로 수차례 번역되고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기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있지는 않았다. 낯설었을 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내용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뒤나 20년 뒤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든다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옆에 두고 세월에 따라 읽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